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베네수엘라 대선 결과를 놓고 여야 지지자들이 충돌해 7명이 숨졌다. 대선에 패배한 야권후보를 지지하는 여성들은 지난 대선 때와 같이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는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경향신문 18일자 9면에 실린 냄비를 두드리며 시위하는 야당 지지 여성들은 한결같이 부(富)티가 철철 흐른다. 어디에도 중남미 인디오들의 가난이 묻어 있지 않다.

대구에 있는 4년제 대학인 경북외국어대가 교육부에 자진 폐교를 신청했다. 경북외대는 해마다 학생수가 줄었다. 지난해에는 정원의 60%만 채웠을 뿐이다. 이 나라엔 80년대 초 4년제 대학이 40개였다가 지금은 200개로 5배 늘었다. 그 사이 고교 졸업생은 5배는커녕 오히려 줄었다. 이렇게 가다간 2018년이면 대학 정원이 고교 졸업생보다 많아져 정원미달 대학이 속출할 예정이다.

학교를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학재단과 교육부의 마구잡이 허가가 이런 재앙을 낳았지만 교육관료 누구도 책임지는 이는 없다.

서울 강남에 있는 무역전시장은 ‘수출입국(輸出立國)’을 만들었던 70년대 고도성장기의 신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64살의 무역전시장 청소노동자 임아무개씨는 지난해 2월부터 연말까지 10개월 계약직으로 일하다 잘렸다. 무역전시장에 청소노동자를 파견하는 용역회사는 퇴직금 안 주려고 10개월짜리 계약기간으로 노동자를 고용한다.

잘린 임씨는 올해 1월부터 여러 번 무역전시장 관리소장을 만나 항의했다. 관리소장 정아무개씨는 퇴직금 지급대상이 아니라고만 말했다. 2월26일 아침에도 임씨는 다시 관리소장을 찾아가 항의하다가 준비해 간 손도끼를 비닐봉지에서 꺼내 들어 관리소장에게 휘둘렀다. 도끼날은 피하던 관리소장의 왼쪽 어깨를 스쳤다. 수서경찰서는 임씨를 수배한 끝에 검거해 살인미수 혐의로 조사 중이다.(동아일보 4월18일 12면)

수출강국 한국을 상징하는 무역전시장도 청소노동자는 여전히 용역직을 파견 받아 10개월만 쓰고 버렸다.

언제부터 이런 간접고용 노동시장이 커졌을까. 8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회사가 자기 빌딩 청소노동자를 직접고용해서 정규직으로 사용했다.

간접고용 노동시장이 커진 결정적 계기는 97년 외환위기다. 불과 15년 사이 60대 간접고용 해고자가 스무살 아래의 정규직에게 도끼를 휘두를 만큼 간접고용 노동으로 인한 폐해가 크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사내하청 노조간부의 분신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사내하청과 촉탁직을 전전하다 자살한 20대 남자도 모두 간접고용이 낳은 비극이다.

화려한 강남의 무역전시장을 쓸고 닦던 이 60대 남자의 살인미수죄가 이 사람만의 죄일까.

베네수엘라 냄비 아줌마들이 부유세를 두려워하는 부자들이고, 오늘날 대학 부실의 원인이 한 치 앞도 보지 못한 교육행정의 실패였고, 강남 대로변 손도끼 살인미수는 간접고용 노동시장이 낳은 비극이다.

우리 언론이 이렇게 겉으로 보이는 사건을 한 번만 뒤집어 보면 좀 더 근본적인 뉴스를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텐데.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