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발전재단

“한국과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는 고도성장기를 이끌어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한창 일할 때 기업도 성장하고, 노동자들은 소득이 높아졌죠. ‘열심히 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것을 체득한 세대입니다. 때문에 이들은 급여수준이나 직위고하 같은 외적지표에 민감합니다. 이들은 스스로의 가치관이나 적성 같은 내적요인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어요. 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커리어 컨설팅은 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다츠노 료지(60·사진) 일본경력개발협회 이사장의 말이다. 일본 민간 전직지원업계의 일인자로 꼽히는 그를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노사발전재단 회의실에서 만났다.

- 한국에서는 커리어 컨설턴트 개념이 생소하다.

“커리어 컨설턴트는 일본 후생노동성이 2000년 제도를 시행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그 전까지 일본사회에서는 커리어 카운슬링이라는 용어가 더 많이 쓰였다.

90년대 후반 일본에서 고용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기 시작했다. 실업률이 3%만 넘어도 사회불안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을 것으로 우려됐는데, 급기야 2002년에는 실업률이 5%까지 치달았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각 정부부처가 고용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고, 후생노동성이 아주 주요한 고용대책의 하나로 커리어 컨설턴트 제도를 도입했다.”

- 정부 정책으로 처음 도입된 제도인가.

“민간에서 전직을 원하는 노동자를 자문해 주는 업체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내가 속해 있는 일본경력개발협회도 95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그 뒤 고용문제가 심각해지고 정부가 제도정비에 나서면서 민관이 협업을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커리어 컨설턴트 제도가 정부의 고용대책으로 도입됐느냐다. 고용문제에 대한 대책을 찾으려면 노동자 개개인이 안고 있는 내면의 문제를 풀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자의 가치관, 일에 대한 생각, 적성과 흥미…. 이런 것을 충분히 이해해야 커리어 컨설팅이 가능하다.

내면의 문제뿐 아니라 외적인 문제를 지원하는 일도 커리어 컨설턴트의 몫이다. 중장년 노동자들은 몇십 년 만에 이력서를 쓰게 된 경우가 많다. 이력서 쓰는 법, 면접 받는 법, 고객을 대하는 방법 등을 하나하나 코치한다.”

- 한국에서는 베이비붐 세대의 사회은퇴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들에게는 어떤 서비스가 필요할까.

“일본은 2007년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시작됐다. 일본사회도 ‘2007 쇼크’라고 부를 만큼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사회에 어떤 충격을 줄지 걱정이 컸다. 당시 가장 큰 이슈는 연금 문제였다. 지금은 일본의 연금 사정이 많이 악화됐지만, 2007년만 해도 사회은퇴자들이 연금으로 생활이 가능했다. 때문에 일본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로 여긴 것은 ‘숙련기술의 단절’이었다.

한국사회도 베이비부머의 사회은퇴에 대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고도 경제성장기에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것을 체득한 세대다. 하지만 앞으로는 저성장이 예고돼 있다. 이들이 느낄 혼란이 매우 클 것이다. 새로운 직장을 찾으려 해도 가치관의 혼란이나 자존감의 추락 등을 경험할 여지가 크다. 커리어 컨설팅은 이들의 심리적인 부분을 보듬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 한국에서는 비자발적으로 일터에서 쫓겨나는 정리해고 문제가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 처한 노동자에게는 어떤 접근이 필요할까.

“일본도 10년 전 구조조정이 시작돼 지금은 일반화됐다. 구조조정을 당하는 노동자는 아주 큰 심리적 쇼크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정신적 충격을 완화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직업은 생계수단이기도 하지만, 자아실현의 수단이자 사람을 지탱하는 버팀목이기도 하다. 버팀목이 사라진 노동자들이 느낄 고통은 매우 크고, 그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아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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