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대한문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중심으로 형성된 '함께살자 농성촌'이 폭력으로 철거됐다. 사람을 쫓아낸 자리에 들어선 화단이 기막히다. 최장기 비정규직 투쟁사업장인 학습지노조 재능지부의 환구단 농성장도 침탈됐다. 농성자와 연대한 이들의 힘으로 다시 되찾았지만 불안이 일상이다. 철탑과 종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대지를 언제 다시 밟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시절이다. 뜬금없는 이념 공세를 앞세운 초랭이 도지사의 도발로 순식간에 폐업 위기에 처한 진주의료원 사태는 공공의료를 둘러싼 전 사회적 투쟁으로 확전됐고, 결국 두 명의 노동자가 또 하늘로 올라갔다.

남북 위정자들과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열강의 위험천만한 불장난 속에 서민의 삶만 더욱 핍진해지고 있다. 정치·경제적 운명공동체인 국가의 대다수 구성원을 차지하고 있는 민중이 이렇게 대상화되고 파편화된 사회에서 희망을 찾기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사회의 근본을 들여다봐야 한다.

헌법을 들춰 본다. 제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다. 아니지. 양극화공화국·비정규공화국·자살공화국·우울증공화국·경쟁공화국이지. 자본독재를 방불케 하는 삼성·현대공화국이자 10대 재벌 앞마당이지. 국민은 선거 기간에만 유사주인일 뿐 초입부터 헌법 정신이 훼손되는 역설적인 현실이 선연히 드러난다. 아침에 눈뜨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국민이 이 나라에 얼마나 될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행복지수가 꼴찌에 가까운 ‘South Korea’에서 노동자들의 삶이 온전할 리가 없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경제성장과 정치민주화를 민중의 노역과 희생을 밑거름 삼아 이뤄 냈으면서도 그 결실을 독점해 온 한 줌도 안 되는 무리가 전횡을 일삼아 온 과정에서 배제되고 심화된 각종 폐해와 문제를 바로잡는 건 그 무리조차 반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더구나 가장 중요한 사회개혁세력인 노조 조직률이 10% 내외에 불과하니 불의하고 초라한 현실 개선은 더욱 요원하다. 국민의 절대 다수로 국부 생산의 근간인 노동자들을 천대하면서 말로만 ‘민주’를 앞세우는 건 남우세스런 일이다.

그렇다면 헌법 정신을 되찾는 첫 걸음은 마땅히 노동에서 출발해야 할 터, 조문을 훑어 내려가니 ‘행복추구권’과 ‘법 앞에 평등’을 거쳐 제33조 노동3권에 이르러 더 나아갈 수가 없다.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이 13자의 의미를 1천800만 노동자들이 제대로 깨쳤다면 이 나라의 현재는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깨우칠 수 있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다수가 평등하고 더욱 행복한 세상으로 달라질 것이다. 노동자뿐만이 아니라 농민·영세 자영업자·실업자·학생·지식인·문화예술인·군인 등 각계각층 사람들의 삶의 연결고리가 단절되지 않고 선순환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만일 튼실한 사회안전망을 갖추기만 했다면 해고가 살인이 되지 않고 비정규직이라고 그대로 2등 국민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계급·계층 간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합리적인 문제해결과 국민통합이 소망사항으로 그치지 않고 가능한 일이 됐을 것이다. 노동운동과 노동정치의 비루한 처지도 퍽 다른 양상으로 귀결됐을 것이다.

노동이 존중받는 헌법 정신이 멈춰 선 곳은 어디일까. 백년대계는 고사하고 살벌한 경쟁이 당연시되는 입시지옥이 된 학교 정문 앞에서 헌법은 멈춰 서 있다. 미래의 예비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노동권 한 줄 가르치지 못하는 학교 안에서 헌법은 질식사 직전이다. 자신의 노동을 팔아 생계를 이어 가고 자기실현의 다양한 포부와 꿈을 펼쳐야 할 일터 입구에서 헌법은 멈춰 서 있다. 대법원 판결을 묵살하는 현대자동차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죽음이 일상화된 조선소와 한국 1등 할인점 정문 앞에 멈춰 선 헌법이 추레하다. 황제경영으로 이 나라의 정·관계까지 잠식해 장악한 재벌가는 자신의 통치구역을 치외법권 지대로 만들어 온 지 오래다. 이 나라 도처에서 헌법은 무시로 초헌법적인 세력에 의해 홀대당하고 있다.

뼈아프지만 빠트릴 수 없는 곳이 있다. 양대 노총을 대표하는 대규모 정규직노조들이다. 현 시기 중차대한 역사적 사명과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은 조직노동의 본산 앞에서 헌법이 머뭇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조직률 2%에 불과한 이 나라에서 전체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지 못한 채 이익단체로만 치우친 불구의 대규모 노조들이 제 역할을 되찾을 날은 언제일까. ‘현대판 음서제’로 비판받으며 채용특혜 논란에 기아차 광주공장이 휩싸인 와중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자살과 분신의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들을 절망으로 몰아간 건 무엇일까. 노동절을 앞두고 지금 이 순간도 많은 이들을 삶과 죽음의 경계로 내몰고 있는 ‘헌법을 멈춘 자’들을 떠올리면서 ‘노동자는 하나’란 말이 가슴에 사무친다. 이제부터라도 조직노동은 모두를 살리는 헌법 정신을 되살리는 데 앞장서야 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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