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얼마 전 마무리된 사건을 소개한다.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던 조합원 A씨가 정년이 돼 퇴사한 사건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아직 정년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확인해 본 결과 호적 기재에 오류가 있었다. 1953년생임에도 1951년생으로 살아온 것이다. 당사자는 실제 나이대로 계산한다면 2년 이상 정년을 더 보장받을 수 있는데, 너무 억울하다며 소송을 통해서라도 구제받고 싶다고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을 찾아왔다.

법원은 A씨의 실제 출생일을 기준으로 정년을 보장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1951년이 아닌 1953년을 기준으로 60세가 되는 날까지 근무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다행히 사용자도 판결을 좇아 복직명령을 내렸다. 비록 나이는 2세나 어려졌지만(?) 2년간 직장을 더 다닐 수 있게 됐다.

완벽하지 않은 전산망 탓에 예전에는 이같이 호적과 실제 나이가 다른 경우가 흔했다. 그런데 흔하게 생각하던 문제가 요즘 들어 절박한 사건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55세나 60세 정년 이후 사실상 실직자로 오랜 기간 살아가야 하는 노동환경 탓이다. 1년이라도 회사생활을 더 하고 싶은 것이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마음 아니겠는가. 최근 금융업에 종사하는 조합원으로부터 비슷한 이유로 구조 요청을 받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절박한 사정을 알기나 하는지 정부와 국회는 정년연장 문제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올해 4월 임시국회에 와서야 우선논의 안건으로 상정됐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촉진법)에서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개정하자는 안건이다.

하지만 각 당이 자기 입장만을 고집하다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이견이 있는 부분은 시행시기와 임금피크제를 도입할지에 관한 것들이다. 정부는 2017년, 여당은 2015년, 야당은 2014년에 시행하자는 주장이다. 정부와 여당은 각각 임금피크제 시행을 전제로 한 정년연장안을 주장하고 있다. 일부 의원발의 안으로는 종사자 규모별로 그 시행시기를 달리하자는 의견도 있다.

정년연장은 그 어떤 제도보다 시급히 개정돼야 한다. 60세 의무는 물론이고 65세 그 이상까지라도 사용자와 노동자가 합의만 한다면 연장한들 무슨 문제이겠는가.

사회적 비용 차원에서 접근해 보자. 고용이, 질 좋은 일자리가 가장 좋은 복지라는 말은 누구나 한다. 정년연장은 장년(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에 새로 도입된 용어)과 어르신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다. 복지국가를 위해 막대한 비용의 국가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정작 구체적인 성과가 있다는 보도는 드물다. 그 돈을 임의대로 쓸 것이 아니라 정년연장을 시행하는 사업장에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만하다. 실제 정치권과 경영계에서는 인건비 증가를 정년연장 도입 반대의 중요한 이유로 들고 있다. 아마도 직접 투입하는 현행방식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지난 5년간 지루하게 제기된 강력한 반대 논리가 있다. 정년연장이 청년노동자들의 실업을 가속화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같은 말을 하던 자들은 간데없다. 통계를 조작하거나 증명되지 않는 비논리였음이 그동안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기 때문이다. 청년의 일자리와 장년의 일자리 영역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일치하지 않는다.

정년연장 도입 사업장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과는 별개로 임금피크제 도입은 노사자율에 맡겨야 한다. 경영상태가 넉넉한 사용자에게까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 않는가. 지난 정부에서 한 공기업은 정년을 연장하면서 임그피크제를 시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영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정부가 기업경영에 개입한 꼴이다.

노동제도는 노동현실을 정확히 반영해야 한다. 때를 놓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의 노동현실에서 정년 60세는 오히려 짧다. 정년연장 법안은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 앞으로 5년 후엔 정말이지 65세까지 정년연장법안이 제안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94kim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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