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당장의 생존을 위해 정부 보조금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기업에는 정부가 직접 지원을 해야겠죠. 하지만 보조금을 내려주는 것은 정부정책 중 가장 수준이 낮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기업이 스스로 시장을 개척하고 판로를 확장할 수 있게끔 체질을 개선하는 쪽으로 정부정책이 변해야죠. 인건비 직접지원에서 교육·컨설팅·홍보·금융지원 같은 간접지원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김재구(49·사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원장의 말이다. 진흥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사회적기업 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회적기업의 지속가능성은 취약하다. 특히 정부 지원 없이 기업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실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정부지원을 받은 사회적기업의 74%가 정부지원이 중단된 2010년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직접지원 같은 관 주도 정책은 사회적기업의 정부 의존성을 심화시키고, 기업이 자생력을 기를 기회를 차단한다”며 “사회적기업을 위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주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6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김 원장을 만났다.

"직접지원에서 간접지원으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으로 공식 인증을 받은 사회적기업은 801곳이다. 총 1만8천925명의 노동자가 사회적기업에 고용돼 일하고 있다. 이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1만1천618명은 사회적 취약계층이다.

사회적기업의 수익구조는 여전히 취약하다. 전반적인 매출 규모는 증가하고 있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감소하고 있다. 상위 10% 업체의 매출규모가 전체 사회적기업 총매출의 54%를 차지하는 등 양극화도 뚜렷하다. 대부분의 사회적기업이 구멍가게 살림살이에서 못 벗어났다는 뜻이다.

사회적기업의 고용여력이 줄어드는 추세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된 2007년 사회적기업의 평균 근로자수는 49.8명이었는데, 2011년에는 25.4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초기 사회적기업이 ‘아름다운 가게’처럼 일정규모를 갖춘 형태였다면, 최근 인증을 받은 사회적기업들은 규모가 작아지고 있다.

“사회적기업의 숫자가 늘면서 총매출이 늘어난 것은 긍정적이지만, 각 기업의 수익성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사회적기업의 고용규모도 줄어들고 있어요. 사회적기업이 다양화·다면화되고 있다는 의미인데요. 정부는 사회적기업이 작아지고 다양해지는 추세를 반영한 맞춤형 정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김 원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맞춤형 정책은 사회적기업을 위한 판로개척 지원과 컨설팅이다.

진흥원이 지난해 사회적기업들을 상대로 ‘기업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나 어려움’을 설문조사한 결과 "판로개척이 어렵다"는 응답이 45.8%로 가장 많았다. 기업 운영에 가장 필요한 지원사항을 묻는 질문에는 "공공기관 우선구매"라는 응답이 14.8%로 가장 많았다. 사회적기업의 최대 고민이 ‘생산된 제품을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자립을 위한 토대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진흥원은 지난달 사회적기업 공공구매지원센터를 개소했습니다. 사회적기업에 적합한 공공구매 인프라를 조성하고, 공공구매가 활성화되도록 지원하기 위해서죠. 센터는 사회적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기 원하는 기업에 직접 찾아가 설명회를 개최하거나, 온라인 상품소개사이트(e-store 36.5)에 사회적기업의 제품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제품 개발단계부터 소비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사회적기업에 대한 교육·홍보도 강화할 계획입니다.”

김 원장은 ‘사회적기업이니까’ 또는 ‘착한기업이니까’ 하는 식의 면죄부는 기업의 지속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사회적기업이 제품경쟁력을 높여 소비자들의 구매의욕을 충족해야만 자립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사회적기업에 관심을 갖고 사회적기업에서 생산된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윤리적 소비나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안 됩니다. 사회적기업이 일반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경쟁력과 가격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진흥원이 사회적기업에 대한 컨설팅 기능을 강화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취약계층 고용유지, 선방했다"

우리나라의 사회적기업 지원정책은 ‘일자리 창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 활동 중인 사회적기업의 60%가 ‘일자리 제공형’이다. 이 같은 기조는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국정과제를 통해 “사회적기업 활성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따뜻한 성장과 국민행복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핵심은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다.

진흥원의 지난해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회적기업 종사자의 75.5%가 근로기간이 정해진 비정규직이다. 파트타임 근로자 비중도 27.7%나 된다. 노동조건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지표인 임금수준도 높지 않다. 조사 결과 100만~150만원 미만(34.2%)·150만~200만원 미만(12.5%)·200만~250만원 미만(6.2%)·50만원 미만(3.6%)·250만~300만원 미만(2.1%) 순으로 파악됐다.

“영세한 사회적기업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마중물 차원의 인건비 지원은 필요하죠. 실제 사회적기업 종사자의 3분의 2가 최저임금을 받는 취약계층입니다. 이들이 받는 월급 실수령액은 102만5천원입니다. 고용과 임금이라는 두 지표를 보면 사회적기업 일자리가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라고 할 수는 없어요.”

김 원장은 그러나 “현재 고용된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취업 취약계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성과”라고 평가했다. 진흥원이 정부의 인건비 지원이 중단된 사회적기업들을 조사한 결과 인건비 때문에 폐업한 기업은 4곳이었다. 또 지금까지 60%가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흥원 예산·인력 늘어야"

김 원장은 19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그는 사회적기업이 일부 시민·사회단체나 운동권처럼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진취적 기업가를 위한 장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사회적기업이 사회공헌이나 나눔 그 자체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민간기업이나 시민·사회단체들이 커버하지 못하는 사회적 이슈, 특히 지역에 밀착한 사회적 관심사를 비즈니스 모델로 변화시켜 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특화된 전문성과 지역사회 네트워크가 필수적입니다. 진흥원이 집중적으로 지원해 나갈 영역이죠.”

김 원장은 “지금 시급한 것은 진흥원의 예산을 확대하고 인력을 늘리는 것”이라며 “지역에 있는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지역 거점사무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김재구 원장은

1982년 2월 부산 동인고 졸업

1986년 2월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95년 8월 서울대 경영학 박사

1997년 1월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2002년 3월 명지대 교수(現)

2005년 3월 기획예산처 기금운영평가단 평가반

2010년 11월 대통령실 사회적기업육성TF 위원

2011년 12월 사회적기업활성화 전국네트워크 운영부위원장

2012년 4월 사회적기업활성화 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現)

2012년 4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원장(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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