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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물량 줄이라”는 위협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중 핵심은 ‘자본의 지리적 이동’이다. 80년대 다국적기업들은 거점생산체제에서 현지생산체제로 전환했다. 미국의 빅 3 자동차기업이 그러한 사례다. GM·포드·크라이슬러는 80년 이후 공장의 해외이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일본·독일 자동차기업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고, 빅 3의 지배력이 약화되면서 이런 경향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빅 3 자동차기업은 생산거점을 북미지역에서 남부지역으로 이전했고, 이후 해외로 눈을 돌렸다. 빅 3의 지리적 이동은 세계 자동차기업의 새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물론 공장이전과 노조의 대응은 나라마다 동일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회사측이 노조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공세적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른바 노무관리 전략으로서 해외진출이다. 공장이전은 ‘강성노조를 피할 수도 있고, 임금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일거양득이 발생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 공장이전은 노조로부터 임금과 근로조건과 관련된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 빅 3의 이러한 공세에 전미자동차노조(UAW)는 반대했지만 공세적이진 않았다. 고용안정을 전제로 양보교섭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공장폐쇄와 해외이전은 막을 수 없었다.

독일의 경우는 이와 차이가 있다. 폭스바겐의 해외진출은 생산방식의 재구성이었다. 독일 공장에서는 신 모델을 생산하는 반면 구 모델의 생산라인을 해외로 이전하는 방식이다. 이른바 ‘이원화 전략’이다. 독일 공장에서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고부가가치의 전략차종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독일 금속노조와 폭스바겐 사업장평의회는 적극적 개입전략으로 대응했다. 고용안정을 요구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단체협약으로 개입했다. 공동결정제도를 활용해 사용자측의 기술합리화나 생산성 향상 요구에 적극 대응했다. 독일 거점공장과 해외공장 간 경쟁 유도에 맞서 노조는 국제적 연대와 협력을 강화했다.

일본의 경우 노사 모두 해외진출에 이견이 없었다. 자동차노사는 협력적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노동강도 강화라는 원칙에 합의했다. 또 공장이전에 따른 고용조정 문제는 비정규직 해고로 해결했다. 때문에 노사 담합적 해외진출이라고 비판받았다. 토요타자동차로 대표되는 이런 국제화 전략은 이른바 ‘마른수건 쥐어짜기’라고 비유됐다.

그렇다면 현대차그룹의 해외진출은 어디쯤에 위치해 있을까. 최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국내 생산물량 감소에 따른 부족분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해외 공장별 생산 증대방안을 짜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국내 생산물량 중 적게는 10만대에서 20만대 수준까지 해외 공장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이다. 이미 해외공장 생산량이 국내 공장을 웃돌고 있는 상황에서 정 회장의 이런 공세적 발언은 새삼스럽지 않다. 하지만 정 회장의 이런 지시를 두고 여러 얘기가 나돌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주야 맞교대제에서 주간연속 2교대로 생산방식을 변경했는데 노조가 주말특근을 거부하자 정 회장이 공세적 카드를 내놓았다는 분석이다. 이른바 노조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위협용 또는 압박용’으로 물량이전 카드를 꺼냈다는 것이다. 물론 현대차그룹 해외공장 네트워크를 고려하면 물량 이전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자동차 조립라인 재조정 과정에서 노사 충돌, 기술적인 문제를 고려할 때 단기간 내 해외로의 물량이전은 어렵다. 때문에 ‘노조 압박용’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항간에서는 정 회장이 노조 탓을 하며 물량이전을 공언했지만 실제로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제기했다는 설도 나돈다. 지난 9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대기업 총수와 등기임원의 연봉을 내년부터 공개하는 법안을 의결했다. 또 감사원은 최근 9개 대기업 총수의 재산증식이 편법증여라며 과세하라고 국세청에 통보했다. 대기업의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내부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를 부를 편법으로 이전한 사례라는 것이다. 9개 대기업에는 현대차그룹도 포함됐다. 이런 가운데 정 회장의 국내 공장 감산지시는 고용률 70% 달성을 국정과제로 삼은 박근혜 정부에 반기를 드는 모양새다. 새 정부 국정과제에 발맞춰 고용창출을 약속하지못할망정 해외로 물량이전을 공언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 회장의 지시는 노조를 겨냥한 것만 아니라는 것이다. 주간연속 2교대 시행과 주말 특근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현대차 노사의 갈등은 사정 또는 노정갈등으로 비화될 소지도 있다. 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우선 정부와 국회는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여부에 대한 근로기준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도 아니면 고용노동부가 종전 행정해석을 바꾸면 된다. 주말특근과 관련해 불필요한 논란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현대차도 노조 압박용으로 물량이전을 공언해선 안 될 것이다. 아울러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주간연속 2교대 시행을 계기로 고용창출은 물론 부품업체 및 비정규직 노동자와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더이상 '물량은 곧 임금'이라는 공식에만 매달려선 안 된다.

박성국  park21@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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