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지난 2008년 5월부터 광우병 촛불시위가 시작됐다. 당시 한국 유일의 공영방송을 자처하던 교육방송(EBS)은 큰 인기를 끌었던 5분 남짓한 다큐 영상 <지식채널e>를 만들어 왔다.

지식채널을 만들었던 EBS의 김진혁 PD는 당시 광우병 문제를 다룬 ‘17년 후’ 편을 만들었지만 경영진의 지시로 한 차례 결방됐다. 그 뒤 청와대 외압 논란이 있었다.
노무현 정권 때 만들어진 프로그램 <지식채널e>는 당시 김진혁 PD 등 2명의 PD가 만들어왔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점차 사회문제를 다루자 경영진은 해당 프로그램의 PD를 1명 줄여 김진혁 PD만 남았다. 김 PD가 만들었던 ‘17년 후’는 2008년 5월12일부터 방영키로 했으나 결방됐다.

김 PD는 경영진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청와대에 파견된 감사원 직원이 EBS 감사팀에 해당 편의 내용을 문의하는 전화를 걸어왔다는 사실과 함께 사건 경위를 담은 글을 당일 인터넷 직원 게시판에 올려 사내 공론화를 유도했다. 이 게시물을 한 EBS 직원이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옮겼고 또 이를 네티즌이 인터넷 포털 ‘다음’의 토론 게시판인 ‘아고라’에 다시 옮기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비난 여론이 비등하고 노조도 문제 삼자 경영진은 결정을 즉각 철회하고 이튿날부터 해당 편의 방영을 재개하기로 했다. 노사가 참여한 공정방송위원회는 “결방 결정 과정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하며 앞으로는 유사한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직원들을 상대로 사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PD는 몇 달 뒤 정기인사 때 <지식채널e>에서 빠졌다. 이를 두고 당시 보복성 인사라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회사는 정상적인 인사권 행사로 해명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올해 4월 EBS가 70% 가량 완성된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중단시키고 담당 PD를 다른 부서로 발령했다. 이번에도 해당 PD는 김진혁이다.

EBS는 지난 8일 <다큐프라임 - 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입니다>를 준비해오던 김진혁 PD를 해당 프로그램과 무관한 수학교육팀으로 인사조치했다. 김 PD는 해방 직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후손들의 이야기를 담은 프로그램을 준비해 왔다.

이번에도 EBS는 여러 구설수에 올랐다. 회사는 지난 1월 정기인사 때 해당 프로그램을 만들던 김 PD를 수학교육팀에 발령했다가 내부 논란이 커지자 다시 교육다큐부로 ‘파견’ 발령해 제작을 계속하도록 했다. 그러나 지난 8일 인사로 아예 제작이 중단될 가능성이 커졌다.

두 정권을 거치면서 내내 순탄치 않은 김 PD의 안타까운 사연을 또 듣는 게 고통스럽다. 2008년 내가 만난 김 PD는 머리에 뿔 달린 사람이 아니었다. 특별히 진보적이지도 않았다. 그냥 평범한 상식을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 하나 감당하지 못하는 EBS가 답답하다.

EBS의 재원은 전기요금 고지서에 딸려 나오는 2천500원에서 나온다. 이 돈을 KBS와 EBS가 나눠 갖는다.

정권과 EBS 경영진은 이 공영방송을 운영하는 돈이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한다.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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