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홍
성서공단노조
사무국장

대구지역은 대규모 원청사업장이 없는 지역이다. 규모로 보자면 6만여명이 일하고 있는 성서공단이 대구지역 최대 공단이다. 전국 광역시·도 노동자 평균임금에서 대구는 최하위권이며, 성서공단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대구지역 노동자 평균임금에도 미치지 못해 대구지역 저임금 구조의 배후지 기능을 하고 있다.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될 때는 최저임금 위반사례가 허다해 최저임금 위반 고발사업이 필요했으나 점점 최저임금 위반사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임금수준은 형편없이 낮은 최저임금으로 묶여 있다.

최근 성서공단에는 용역회사를 통한 채용이 늘어나고 있다. 불법파견을 하고 있는 곳은 죄다 최저임금 수준을 준다. 이렇게 최저임금이 확산되는 가운데 장기근속자에 대한 임금보상이 사라지고 있어, 회사를 옮겨도 노동조건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노동자들은 연장근로와 특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5천명에서 6천명 정도로 추산되는 이주노동자들은 더욱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여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노동조건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사업장 규모가 영세하고 자본의 지불능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수당이나 임금성 복지제도가 전무하다. 노동기본권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한다. 그러니 인간다운 삶, 풍요로운 문화생활,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저임금 구조에서 벗어나야 장시간 노동도 근절되고 그래야 인간다운 삶도 가능하다. 성서공단노조가 노동자들을 권리의 주체로 세우기 위해 노력해 온 배경이다.

다른 나라를 보더라도 노조운동은 전통적으로 소규모 사업장 조직화를 꺼린다. 노력에 비해 조직되는 조합원수가 적기 때문이다. 또한 직업소개소 등을 통해 취직하는 경우가 많고 이직률이 높아 조직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을 돌파해야 배제되고 소외받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자의 70~80%나 되는 우리 현실에서 이들을 조직하지 못한다면 노조의 의미는 어디에 있겠는가. 민주노총이 전체 노동자들의 대표성을 갖지 못하는 지금, 노조로부터 배제된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주체로 세우는 일은 민주노조운동의 혁신과제와 맞물려 있다.

배제와 소외를 철폐하는 것, 가장 심각한 착취에 시달리는 원·하청 구조의 맨 끝에 있는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그 노동자들의 요구를 함께 걸고 연대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자본의 분할전략에 맞서 계급적 단결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또한 원청대기업 노동자들과 하청인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단결과 공동투쟁을 만들어 가는 출발점이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나 이주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우거나, 이들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한국의 산업구조에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영세·비정규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못함으로써 진정한 계급적 대표성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이제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그 의제와 투쟁의 요구를 전체 노동자들의 것으로 만들고 투쟁에 나서 노동자계급 대표로서의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는 민주노총의 계급성을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노조의 사회운동과 변혁운동을 강화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기업단위로는 임금과 노동조건을 올리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삶을 열악하게 만드는 구조에 저항하고 스스로를 주체로 세우도록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 안의 차별인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는 중요한 운동적 의미를 갖고 있다. 성서공단노조도 그런 의미로 출발했고 10년을 경과하고 있다.

늦었지만 민주노총의 2기 중소·영세사업장 전략조직화 사업과 금속노조의 1지부 1공단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환영한다. 사업이 확대·재생산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지역노조운동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 수 있도록 창의적인 실험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변화를 갈망하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바람과 조직화를 위해 애쓰는 다양한 시도가 함께하는 상승 분위기를 타고 전면적이며 공세적인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에 나서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