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
마창거제산재추방
운동연합 활동가

전국 곳곳에서 비정규직과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민주노총의 전략조직화 사업으로 대표되는 노동조합의 전략조직화 사업뿐만 아니라 최근 3~4년 동안 노동·사회단체들도 ‘노동자권리찾기 사업단’ 등 다양한 이름으로 조직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불안정 노동자, 즉 아직 세력화돼 있지 않은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가 조직방침에 따른 사업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전략조직화가 아니라 노동연대전략에 따라 '사업'이 아닌 '현장운동'으로 확대되고 일상화돼야 한다.

연대전략은 조직돼 있지 않은 노동자를 일방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노조운동 진영이 노동자 대중의 이해를 대표하는 계급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동운동 내부를 혁신하는 과정이다. 노동자 연대를 확장하기 위해 주체를 발굴하는 과정이다.

연대전략 없이는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공감해야 한다. 지침에 따른 참여가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돼 실천할 수 있도록 하려면 더 많이 교육하고 더 많이 토론해야 한다.

또한 노동연대전략은 현재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를 대상화하는 사업에 그쳐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이 자기 현장과 자기 지역, 자기 일상에서 누구와 연대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모색하는 과정에서 연대전략은 풍성해진다. 이미 많은 곳에서 이를 실천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현재 민주노총 전략조직화 사업은 민주노총 혹은 각급 연맹이나 산하조직에서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전략조직사업이 아니라 노동연대전략으로 나아가려면 체계와 계통 속에서 움직이는 사업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노조와 현장조직, 지역에서 중층적으로 진행되는 운동이 돼야 한다. 이런 중층적 활동이 지역으로, 전국으로 집중될 때 노동연대전략도 현실화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모색하는 활동의 일환인 ‘거제·고성·통영 노동건강문화공간 새터’를 소개하고자 한다. 새터는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의 정규직노조 활동가들과 지역 활동가들이 주축이 돼 설립됐다. 기업의 울타리와 조직의 차이를 넘어 지역의 비정규직·미조직 노동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정규직 활동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다.

민주노총의 전략화사업도 아니었고 노조의 지침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온전히 지역 활동가들의 고민에서 출발했다. 초기에는 “우리 사업장 안에서도 제대로 조직활동을 못하고 있는데 그 먼 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복수노조와 타임오프로 지회의 운신 폭이 급격히 축소됐고 답답한 상황인데 가능한 일인가” 하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하지만 끊임없는 학습과 토론, 공단 권리 선전전 등 실천활동 속에서 노조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사업장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연대를 확장하고 세력을 구축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에 동의하게 됐다. 그리고 권리 선전전에서 나아가 지역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지역 노동자의 자유로운 소통과 연대의 공간을 열게 됐다.

새터는 노동자들의 회비로만 운영되는 자주적인 조직이다. 모두들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역의 정규직들이 주머니를 털어 보태기 시작했고, 회원들은 총회에서 사업비 지출을 결정했다. 활동을 시작한 지 1년이 되는 지금 새터는 지역에서 다양한 연대사업을 하고 있다. 정규직·비정규직·이주노동자·대형조선소·중소조선소의 틀을 뛰어넘는 지역투쟁을 모색해 가고 있다.

이러한 자발적 운동이 지역현장 곳곳에서 확산될 때 노조 체계에서 진행되는 사업도 현장 생명력을 가진 올곧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또한 지역운동을 복원하고 지역연대를 강화시키는 과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중소·영세사업장 공단조직화 사업은 노동기본권을 알리는 선전전과 지역공단에 대한 실태조사 사업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노조 간부들도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선전물을 배포하는 역할 정도에 머물러 있다. 이제 조금 더 실천적인 투쟁으로 나아가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최저임금 문제나 불법파견 등 지역공단 의제가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만의 의제가 아니라 지역 노동자 전체의 요구로 확장되고 지역단위 노조와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역과 현장단위의 공동의제를 가지고 조직노동자가 실천투쟁에 나서기 시작할 때 공단조직화 사업도 실질적인 조직화 과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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