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아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

공장에 들어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파견회사 직원을 만나 ‘을’이 되겠다는 계약서에 사인하면 끝. 파견회사 직원은 이 공장이 법정최저임금을 ‘꼭’ 준수하고, 잔업·특근이 많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좋은 회사임을 강조했다. 나는 이후 3일이라는 시간 동안 시험대에 올라야 했다. 얼마나 말을 잘 듣는지, 작업속도는 금방 따라붙을지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흘이면 충분했다. 그 시간이 지나자 계속 지켜볼 사람과 잘라 버릴 사람이 갈렸다. 같이 입사한 친구를 사흘 만에 떠나보내고, 난 그렇게 인간기계들 중 하나가 됐다.

맡은 일은 간단한 제품 조립.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든지 하루만 세워 두면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정규직 언니들에겐 자신이 없으면 공장이 안 굴러갈 것이라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어려울 때도 함께 고생하며 공장을 일궈 왔다는 마음도…. 하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이런 노동자들의 마음은 쉽게 짓밟히고 말았다.

아침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날이었다. 조립실을 총괄하는 대리가 사장과 대판 싸우고 그만두겠다고 하고, 정규직들은 전원 퇴사하겠다고 나섰다. 여기저기 귀동냥을 해 보니 ‘정규직 시급 100원 인상’ 요구를 회사가 거부한 것이다. 그럼에도 연차일수는 줄이겠다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물론 그중에는 대리에 대한 의리 때문에 그만두겠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이에 대한 회사의 반응은?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싫으면 나가라. 일할 사람은 많다”란다.

퇴근시간이 되자, 정규직들은 격분하며 사직서를 내던졌다. 파견직들은 안절부절못하다가 “너희는 이만 가라”는 말을 듣고서야 탈의실로 발길을 돌렸다. 파견직 내의 불안감이 높아졌다. 회사가 망하는 것은 아니냐는 둥, 나도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둥.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퇴근길에 파견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일은 할 만하신가요? 오늘 현장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했죠? 우리랑은 상관없는 일이니까 가능하면 계속 일해 주세요.” 아, 이렇게 갈리는구나 싶었다.

정규직들은 2~4주 정도 일을 더 하기로 했다. 공장이 돌아갈 수 있게 파견직에게 일을 가르쳐 달라는 회사의 마지막 부탁을 언니들은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마지막 남은 자부심, 노동자의 의리를 지키고자 한 것이리라.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어느 공장이 돈을 얼마나 준다더라, 잔업이 많다더라"는 말들이 자주 나왔다. 상여금도 없고, 매주 최초 잔업 4시간은 1.25배로 최저기준을 확실히 맞춰 주는 이 공장은 아무리 봐도 최악이기에, 너 나 할 것 없이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조금 더 나은 곳이라 해 봤자,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사실을 그녀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언니들은 공장에서 처음 일한다는 나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젊은 나이에 이런 데서 일해 뭐해. 공부해서 더 나은 직장엘 다니는 게 좋아.” 자신들처럼은 살지 말라는 시큰거리는 말을 늘 덧붙였다.

쫓겨나듯 정규직들이 그만두고 100% 파견업체 직원들로 라인이 돌아갔다. 기존 생산량으로 돌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금방이었다. 물론 그 사이에 수많은 사건·사고가 있었다. 새로운 관리자는 각 제품이 창고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공정 순서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라인을 돌렸다 세웠다를 반복했고, 급하게 납품한 물건이 불량이라며 대량 반송되는 일이 속출했다. 생산계획은 엉망이 됐고, 이는 잔업·특근이 줄어드는 것으로 이어졌다. 앞서 말한 대로 이곳은 잔업·특근이 많은 것이 가장 큰 강점인데, 그것이 들쑥날쑥해지니 사람들의 불만이 날로 커졌다.

하지만 새로운 관리자는 이 불만을 도리어 영리하게 이용했다. 잔업·특근을 시키는 사람과 안 시키는 사람을 의도적으로 갈랐고, 그 기준은 ‘이주민(조선족중국인·새터민)’과 ‘내국인’이었다. 관리자들은 내국인들에게 “넌 일을 잘 하니까, 빨리 정규직이 되게 해 주겠다. 쟤들은 말만 많고 곧 떠날 애들”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교묘하게 갈등을 부추겼다. “그렇게 정규직이 되면 또 쫓아내려고?”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그냥 삼킬 수밖에 없었다. 공장이 다시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한 뒤에도 이 갈등이 계속됐음은 너무나 당연했다. 서로가 잔업·특근의 경쟁자가 아닌 동료, 나아가 친구가 되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노동자로서 존중받길 원하지만 그것을 쉬이 인정해 주지 않는 현실 앞에서 기껏 저주를 담은 사직서 한 장 내던지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사람들. 정규직-파견직이 반복되는 삶, 정규직 이래 봤자 4대 보험 때문에 세금을 더 내는 것이 속 타는 사람들. 한 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서 160만원 남짓의 돈을 손에 쥔 경쟁자가 마냥 부러운 사람들. 병원에 가고 싶어도 퇴근길에 닫힌 병원 문을 멀뚱히 바라만 봐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크고 작은 공장들이 밤낮없이 돌아가는 곳, 그 안에 시급 4천580원(2012년 최저임금)짜리 인생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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