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안전기술원의 노사관계를 지켜본 결과 서로 피를 한번 봐야겠더라. 노조 버릇이 잘못 들어 있다. 이사장을 내쫓는 것을 노조의 '공'인 양 여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노사는) 똥개들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고용노동부 서울관악지청장이 승강기안전기술원의 노사관계를 평가하면서 한 말이다. 해당 발언은 노동부유관기관노조 승강기안전기술원지부(지부장 김봉섭)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벌이던 중 사측이 조합원에게 공지하면서 공개됐다. 사측이 찬반투표에 개입하기 위해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관악지청장의 부적절한 언급은 승강기안전기술원(이사장 김윤배)이 지부 조합원 총회를 불법도청한 사실이 밝혀진 지 6개월 만에 발생한 일이다. 김윤배 이사장은 도청파문으로 인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기술원은 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노사는 2009년 지부 설립 이래 노사문화 공동선언·노사화합 등반대회·생산성 향상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협력선언 등을 하며 원만한 노사관계를 유지해 왔다. 쟁의행위 찬반투표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지부가 최근 파업 초읽기에 들어갔다. 노사관계에서 모범을 보여야 할 노동부 산하기관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 노사화합 사업장이 분규사업장으로=노동계는 노사갈등의 원인으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지목했다. 한국노총은 8일 성명을 내고 "김윤배 이사장의 전근대적 노사관과 거꾸로 가는 경영이 문제"라며 "사측의 불성실한 교섭태도와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파국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술원의 노사관계는 지난해 1월 김 이사장이 부임하면서 냉각되기 시작했다. 김 이사장은 중앙노동위원회 사무처장과 대전지방노동청장을 지낸 노동부 관료 출신이다. 지부는 "노동부 출신 인사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노사관계에 대한 기대가 높았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부는 11일 전면파업을 앞두고 있다. 표면적으로 내건 파업 이유는 노동부 산하기관 평균 임금상승률을 반영한 임금 지급과 체불 성과급 지급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이사장의 경영방식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노사갈등은 지난해 4월부터 본격화했다. 노사는 같은해 3월부터 4월까지 교섭을 진행해 단체협약 110여개 조항 중 103개 조항에 대해 타결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사측이 단협만료일인 4월26일 새로운 단협안을 제출했다. 이전까지 잠정합의한 모든 사항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다. 게다가 사측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에 집착했다. 기술원의 타임오프 한도는 연간 4천시간(2명)이다. 그럼에도 사측은 1천600시간으로 줄일 것을 요구하며 조합비 공제마저 거부했다. 노사는 진통 끝에 근로시간면제자를 현행 2명에서 1명으로 감축하고, 지부가 요구하는 6개 수당 신설과 3개 수당 인상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불법도청에다 무자격자 검사투입까지=단협 체결 8시간 뒤 사측은 아무런 통보 없이 지부 사무실과 사내 인트라넷을 폐쇄했다. 지부가 반발하자 사측은 기술원 인근 오피스텔에 지부 사무실을 마련해 주면서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다. 노사갈등은 봉합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측은 지난해 9월 지부 간부들을 대상으로 원거리 전보발령을 냈다. 순환근무에 따른 전보발령은 매년 2월께 진행되는데, 지난해에는 9월에 한 번 더 실시된 것이다. 사측의 의도는 미루어 짐작할 만했다.

이로 인해 지부 간부 70%가 전보발령을 당했다. 사측은 검사업무 인원이 부족해지자 무자격 검사원을 위험기계 검사업무에 투입하는 어이없는 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한정애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를 공개하고 "기술원 직원뿐 아니라 기술원을 믿고 위험기계의 안전 및 성능검사를 맡기는 기업들을 속이는 행태이자 중대재해를 일으키는 범법행위"라고 비난했다. 당시 국감에서는 사측이 지부를 깨려고 대규모 전보인사를 단행했다는 질타가 잇따랐다.

일각에서는 노동부가 갈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법도청 등 잇단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노동부 관악지청은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 불법도청과 관련해서는 구로경찰서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해당 직원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상태다.

김봉섭 지부장은 "김윤배 이사장은 직원에게 녹취를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하면서도 해당 직원과 공동으로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사측의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식의 태도와 이를 묵인하는 노동부가 노동자들을 파업으로 내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사측은 부당노동행위를 중단하고 성실한 자세로 교섭에 임해야 한다"며 "공공연맹·노동부유관기관노조 등 관련기관과 함께 지부의 투쟁을 적극 엄호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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