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노조

"CCTV가 없는 화장실에서 노조가입서를 작성해 그걸 수십 번 접어 주머니에 넣어주시는 조합원들이 있어요. 손 때 묻은 꼬깃꼬깃한 그 가입서에 담긴 마음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김기완(37·사진) 홈플러스노조 위원장은 조합원들의 사연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대형마트는 시민들에게 친숙하고 일상적인 공간이다. 반면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김 위원장은 "편리하고 깨끗한 마트 이미지와 달리 그 속살은 각종 탈법과 불법으로 얼룩져 있다"며 "노조간부인 저조차 듣도보도 못한 다양한 고용형태에 놀랄때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1일 오전 서울 영등포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노동자로서 법에 보장된 최소한의 기본권만이라도 되찾고 싶어 노조를 설립했다"며 "노동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일터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현재 홈플러스 영등포점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2011년 1월 명절 아르바이트노동자로 입사해 수습 TW(Time Worker)와 비정규직을 거쳐 올해 1월 무기계약직이 됐다. 2년 동안 5번의 근로계약서를 썼고, 그때마다 불안에 떨었다. 홈플러스는 이마트에 이은 두 번째 대형 유통업체다. 노조에 따르면 1·2차 하청에 따른 간접고용 노동자와 직접고용 비정규노동자 비율이 9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에 직접고용된 이들은 오픈조(새벽 6시 출근, 오후 2시30분 퇴근)와 마감조(오후 2시30분 출근 밤 11시 퇴근)로 나눠 일한다. 그러나 이는 사문화된 문구일뿐이다.

노조는 "관행화된 불법 연장근무로 출근시간만 있고 퇴근시간은 없다"며 "명절 등 일이 밀릴때는 출근 후 80시간만에 퇴근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28일 설립된 노조가 첫 사업으로 연장근로수당 청구소송을 제기한 이유다.

"남성의 경우 '바늘구멍'을 뚫고 40대에 정규직이 된다해도 박봉으로 인해 가정을 꾸릴 수 없어 30대 중반이면 퇴사를 고민합니다. 여성은 감정노동에 따른 우울증과 육체노동에 의한 골병으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될 때 일을 그만두죠. 정규직을 꿈꾸며 입사한 청년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찾지 못해 금방 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한 청년은 마트의 실상을 보고는 '은행에 갔다 오겠다'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사례도 있었어요."

김 위원장은 "장시간 근로와 저임금에 시달리다 지쳐 떠나가는 동료들을 보며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다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노조를 설립했다. 그는 "오로지 정규직이 되기 위해 상급자가 부당한 일을 시키고 인격모독을 해도 무조건 참고 버텨야하는 구조를 바꿔보고 싶어 노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측은 현재까지 노조설립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점포마다 정시퇴근을 지시하고, 협력업체직원에게 관행적으로 시키던 청소를 하지말라고 지시하는 등 불법적 요소들에 대해 시정 조치를 내리고 있다고 노조는 전했다.

김 위원장은 "회사가 합법적인 노조를 부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법적분쟁보다는 노사 간 교섭을 통해 만연된 불법적 행태를 바로잡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협력업체 직원들의 처우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더 열악하다"며 "현재는 직접고용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노조활동을 시작했지만 노조가 자리잡게 되면 협력업체 직원들의 권익도 대변할 수 있는 구조로 개선하겠다"고 다짐했다.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용형태는 천차만별이다. 마트에 직접고용된 정규직·비정규직과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들어온 비정규직, 납품업체에 고용됐지만 근무지는 마트인 협력업체 직원, 시간제 아르바이트 노동자 등 다양한 노동자들이 모여있다. 협력업체 직원의 경우 임금을 지급하는 회사, 고용계약을 맺은 회사, 실제 일하면서 지시를 받는 회사가 제 각각인 경우가 적지 않다.

김 위원장은 "마트는 우리 사회 비정규직의 문제가 집약된 곳"이라며 "이번 노조설립이 수십만 마트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사회적으로 알려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그간 동료들이 사측의 부당행위에 맞서는 방법은 혼자 울거나 술을 마시다가 한계에 달하면 일터를 떠나는 게 전부였다"며 "이제는 노조가 그들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노조는 노조설립과 동시에 부당행위신고센터를 개설했다. 센터에는 수십건의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 노조는 사측에 교섭을 요청하고 불법연장근무 중단·부당노동행위 근절 ·감정노동 방어권 보장을 위한 활동에 나설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조합원들과 함께 홈플러스를 노동자들이 자존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일터로 바꿔내겠다"며 "사측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관행화된 불법행위를 시정하지 않는다면 집단소송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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