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고용안정과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방안으로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을 들고 나왔다. 이 제도는 특정 사업장 내 일감 변동에 따라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한다는 점에서 ‘내적 유연화’ 방식에 가깝다. 반대로 물량의 변화에 따라 외부에서 비정규직을 들여오거나 내보내는 방식은 전형적인 ‘외적 유연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내적 유연화 방식에 대한 풍부한 논의가 없었다.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비정규직 사용을 선호해온 탓이다. 비정규직을 자신들의 고용안전판으로 삼았던 일부 정규직노조들의 교섭관행도 기업이 외적 유연화를 강화하는 데 한몫했다. 그 결과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차별문제가 심각해졌다. 정규직 역시 “해고되기 전에 더 벌자”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장시간 노동의 덫에 발목이 잡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사업장 내부를 유연화하는 방안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근로시간저축계좌제의 원리는 간단하다. 일감이 늘어 초과근로가 많을 때 노동자는 법정노동시간에 해당하는 급여를 받고, 나머지 수당은 저축해 놓는다. 대신 불황이 닥쳐 일감이 줄면 예전에 저축해 놓은 수당을 받아 급여를 보전하거나 유급휴가에 들어간다. 경기변동에 관계없이 일정한 수준의 급여와 고용이 보장되고, 유급휴가 기간 만큼 노동시간이 줄어든다는 점이 이 제도의 장점이다. 반면 임금의 총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은 이 제도의 단점이다. 초과근로시간을 저축할 때 급여 할증률을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는 그만큼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노동부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와 함께 탄력적근로시간제의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2주 이내의 일정한 단위기간을 평균해 주 40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특정한 주에 수당 없는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노사가 서면으로 합의하면 단위기간을 3개월까지 늘릴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는 2주의 단위기간을 1개월로, 3개월을 1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역시 노동시간을 유연화하는 방안이다.

근로시간저축계좌제와 탄력적근로시간제는 ‘수당 없는 연장근로’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 노동계의 거센 저항이 예상된다. 반면 장기적으로는 시장 수요에 따른 탄력적인 기업운영으로 고용을 안정화하고, 경기침체기에 휴가를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한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젊을 때 일을 많이 한 뒤(근로시간 저축), 50세가 넘어 고령화되면 젊을 때 저축해놓은 계좌에서 안정적으로 급여를 받으며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령화 사회의 대안으로도 언급되고 있다.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은 “노동자들이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일은 많이 하고, 급여는 덜 받는’ 방식으로 오인할 소지가 크다”며 “제도의 취지와 적용 가능성에 대한 폭넓은 사회적 대화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 40시간이라는 법정노동시간이 '노동시간 상한제'로 작동해야 '더 일한만큼 휴가 간다'는 제도의 목적에 접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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