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KTX 플랫폼에는 컨테이너박스 같은 물류창고가 있다. 어두침침한 창고 안에는 열차에 실린 과자부터 도시락· 물·주류·음료수가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지난 22일 오전 서울역 KTX 플랫폼 물류창고에서 만난 노동자 A씨는 부산행 KTX에 실을 물건을 검수하고 있었다. A씨는 "쥐꼬리만 한 월급에 임금착취까지 당하니 일할 맛이 안 난다"며 "세계 최고의 법률가가 와도 우리 월급에서 더 깎을 순 없을 것"이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A씨는 KTX·새마을호·무궁화호에 도시락·음료수 등 각종 물품을 싣고 내리는 일을 한다. 1년 365일 명절에도 쉬지 못하고 주야로 일한다. 연차는 없다. 경조사가 발생하면 눈치를 봐 가며 무급휴가를 사용해야 한다. 경조사비는 언감생심이다.

게다가 A씨와 동료들은 대부분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KTX 한 차에 실을 음료수·물·도시락·과자 등 50여개 물품을 담다 보면 카트 1대당 250킬로그램이 넘을 때도 있다. 싣고 내리고 다시 끌고가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허리·무릎·손목·어깨에 파스를 달고 산다.

코레일서 코레일관광개발로, 다시 대구백화점서 엠서비스로

A씨는 철도를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지만 코레일 소속이 아니다. 코레일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과 계약을 맺은 대구백화점으로부터 재하청을 받은 엠서비스라는 아웃소싱업체에 속한 다단계 하청노동자다.

(주)삼구라는 아웃소싱업체 소속이었던 A씨는 지난해 9월 업체가 엠서비스로 바뀌면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엠서비스는 재계약 3개월 만인 같은해 12월 적자를 이유로 10만~30만원이 삭감된 새로운 계약서를 내밀었다. 노동자들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1월부터 삭감된 월급이 지급됐다. 100만원을 갓 넘는 돈이었다.

사측은 인원도 줄였다. 3조 15명씩 일하던 인원에서 3~4명씩 줄였다. 빈자리는 단기 아르바이트생으로 메웠다. A씨는 "세계 일류를 지향한다는 공기업이 철도에서 꼭 필요한 상시업무를 다단계 하청화하고 알바생으로 대체하고 있다"며 "노동조건 악화는 열차 승객들의 손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인력충원·직접고용 하라"에 '묵묵부답'

그런 가운데 철도열차 물류 상·하차와 새마을·무궁화·관광열차 식품판매를 담당하는 철도 하청노동자들이 올해 1월 만든 공공운수노조 철도물류승무지부(지부장 김석)가 △적정인력 충원 △생활임금 보장 △아르바이트생 고용 중단 △원청 직접고용 등을 요구하며 3개월 넘게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원·하청 모두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고 있지 않고 있다. 코레일관광개발에는 대여섯 차례 교섭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묵묵부답이다. 엠서비스는 이달 17일 열린 첫 교섭에서 중식집회 중단을 전제로 1·2월분 체불임금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김석 지부장은 "우리가 요구하는 건 두 달치 체불임금이 아니다"며 "생활임금을 보장하라"고 말했다.

철도물류승무지부 "노조탄압 중단하라"

지부는 미지급 급여 지급과 생활임금 보장 외에도 인력충원과 단기 아르바이트 고용 중단 등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김 지부장은 "야간이나 철야근무에는 낮은 임금의 아르바이트를 쓰고 있다"며 "2월에는 아르바이트만 전체 60%를 차지했다"고 비판했다.

강신성 지부 사무국장은 "단기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용하면 퇴사가 잦기 때문에 일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상당히 힘이 든다"며 "아르바이트생이 실수하는 일도 우리가 덮어쓰는 일이 많다"고 토로했다.

지부는 노조탄압 중단도 촉구했다. 엠서비스는 최근 임금이 삭감된 뒤 생계가 어려워지자 비번날 역내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한 조합원을 '겸직 금지' 사규를 어겼다는 이유로 해고했다. 엠서비스는 특히 지부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노조 탈퇴 내용증명서를 모아 지부에 전달하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지부장은 "엠서비스는 몇 년 전 대전·창원 롯데백화점 하도급업무를 담당하면서 민주노총에 가입한 시설관리 노동자들을 탄압한 전력이 있다"며 "지금도 조합원·비조합원 개별면담을 하며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지부의 주장에 대해 엠서비스 관계자는 "답변할 얘기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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