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전국플랜트건설노조원 3천여명이 지난 16일 초단기 계약직 노동자 15명이 숨지거나 다친 폭발사고가 터진 대립산업 전남 여수공장 앞에서 집회를 열어 진상조사와 최고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이 사고로 숨지거나 다친 노동자 대부분은 하청업체로부터 다시 일부 공사를 넘겨받은 재하청업체가 모집해 작업을 해왔다. 또 낯 뜨거운 건설업계의 다단계 하청구조의 모순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물론 다단계 하청 자체가 불법이다.

해당 노동자들은 (재하청인) 모 플랜트사 소속인데도, 서류에는 유한기술 소속 노동자인 것처럼 근로계약서를 썼다. 조작한 공정별로 서로 다른 하청회사에 떠넘기는 이런 단계 하청구조는 작업하는 노동자들의 단절을 불러왔다.

실제 현장 노동자는 “폭발사고가 나는 순간에도 바로 옆에서 위험한 용접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플랜트건설노조 여수지부는 재하청업체가 이윤을 남기려면 장시간 노동과 무리한 작업에 내몰릴 수밖에 없어 노동자 안전은 뒤로 밀린다고 언급했다.

이런 간접고용 노동자는 노동부는 물론이고 어디에도 공식 집계조차 안 돼 명확한 통계조차 없다. 학자들도 적게는 55만명에서 많게는 100만명으로 추산할 뿐이다.

대기업들은 사용종속관계를 쉽게 은폐할 수 있고, 사고가 나도 하청 또는 재하청 회사에 책임을 쉽게 떠넘길 수 있어 선호한다. 더구나 이곳은 지난해 6월 폭발사고 뒤 제대로 된 안전조치만 취했어도 이번 같은 안타까운 사고가 재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의 보도는 이런 다단계 하도급을 짚는 게 먼저이고, 보다 근본적으론 확산되는 간접고용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그러나 한겨레와 경향신문 정도만 이런 문제점을 일부 언급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 보도 과정에서 일부 신문은 한 달 짜리 ‘초단기 계약직’을 강조하다 보니, 다소 무리한 기사를 쏟아내 해당 노동자들을 낙인찍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한겨레신문이 16일자 1면에 <여수 폭발 사상자 ‘한 달 짜리 계약직’이었다>는 제목으로 보도하자, 조선일보가 18일자 사설에서 <떠돌이 일꾼들에 ‘안전’ 맡겨놓은 여수화학공단>이란 다소 자극적인 제목으로 보도했다.

해당 노동자들은 플랜트 건설이라 하면 전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일꾼들이다. 두바이 열사의 사막이든지, 혹한의 남극 연구소나 파도치는 해양 원전 건설까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한국의 플랜트 노동자들을 ‘한 달 짜리 계약직’이나 ‘떠돌이 일꾼’으로 폄하하는 듯한 제목 달기는 근본적으로 화이트칼라 노동자인 기자들의 먹물 근성에서 비롯되진 않았는지 곰곰이 되짚어 봐야 한다.

한국의 플랜트건설 노동자들은 비록 사고가 난 하청업체와는 한 달 짜리 초단기로 계약했을지 몰라도, 이미 수년씩 힘든 건설현장에서 단련된 숙련공들이다. 계약기간이 짧은 건 대기업이 건설비를 더 남겨 먹기 위한 편법일 뿐이지, 해당 플랜트 노동자들은 시공능력과 기술력에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노동자를 떠돌이 날품팔이처럼 취급하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편집하는 건 온당치 않다.

두 신문이 해당 노동자를 폄하할 의도로 이렇게 제목을 단 건 아니라 해도 독자들에게 초단기 계약직, 떠돌이 일꾼 같은 고정관념을 심고,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쪽으로 편집한다면 결국엔 해당 노동자들을 폄하는 꼴이다. 동시에 이번 사고의 근본원인을 바로잡는데도 결코 도움을 주지 못한다.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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