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
본부 국장

또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4일 오후 전남 여수 대림산업 화학공장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 6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11명의 노동자가 부상당했다. 사고가 난 대림산업 여수화학공장의 모습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맞다. 분명히 전쟁이다. 남·북 간의 전쟁이 아니라 노동자의 생명을 무시하고 경제 제일주의만을 외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안전불감증, 무능하고 형식적인 정부의 지도·감독, 사업주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솜방망이 처벌의 사법부 등 '죽음의 연합군'과 노동자와의 전쟁인 것이다.

그런데 전쟁이라고 하기엔 민망하다. 노동자의 힘이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이다. '죽음의 연합군'을 막아낼 무기도, 후방지원도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학교 일진한테 집단폭행을 당하는 힘없는 학생의 모습에 오히려 더 가깝다.

대한민국은 요즘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전국 곳곳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노동자와 국민은 매일매일 공포에 떨고 있다. 언제 어느 곳에서 폭발·누출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을 지, 소중한 가족을 잃을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정부는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터질 때마다 관련 대책을 마련한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이번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유독성 화학물질 누출사고와 관련해 예방대책 수립을 해당부처 장관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원인을 파악해 근본대책을 수립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해 달라"고 주문했다. 특히 유독성 화학물질 누출사고와 관련해 "사고가 나면 국민 생명에 위협이 되고 피해를 복구하는데 돈이 더 많이 든다"며 "사고 발생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어 미연에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마련해 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지자 같은날 국무총리실은 고용노동부·환경부 등 6개 부처 차관 등이 참석하는 회의를 열고 유해화학물질 안전 1단계 대책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을 전수조사하기로 했으며, 유해위험성이 큰 작업에 대해서는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 도급을 제한하거나 공동책임제를 실시한다는 내용이다. 노동부 또한 이날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요인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11일부터 한 달간 전국 지방노동관서별로 사망재해 예방 특별감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런 정부의 발표가 끝나기 무섭게 사고는 또 터졌다. 정부의 진단과 처방 모두 잘못됐다는 반증이다.

정부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사고 수습에만 급급했다. 사법부는 사고발생 기업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만 내렸다. 2008년 경기 이천 냉동창고 폭발·화재사고로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사업주에게 내려진 처벌은 벌금 2천만원이 끝이다. 산재사망으로 구속된 사업주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죽음의 행렬 멈추기 위한 대통령직속 특위 만들자

노동자의 죽음의 행렬이 멈추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대통령에게 있다. 업무상 재해로 매일 6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260여명이 부상당하는 끔찍한 현실을 대통령은 알고 있을까.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무능한 해당 부처에게 해결책만 주문한다면 국민의 생명보호를 위한 대통령으로서 막중한 임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철학으로 시대적 소명을 행복한 국민, 행복한 한반도, 신뢰받는 모범국가로 정했다. 연일 화학물질 폭발·누출사고가 발생하는 나라, 하루에 6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260여명의 노동자가 부상당하는 나라에서 국민은 결코 행복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행복한 한반도가 될 수도 없다. 신뢰받는 모범국가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이제는 노동자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해결해야 한다. 노동자의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원인파악과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이 산업재해로부터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내기 위한 대통령직속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지속적으로 참여한다면 우리나라의 산업재해는 선진국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다. 특위에서는 그동안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요구한 ‘기업살인 특별법’제정을 비롯해 다양하고 강력한 대책을 논의할 수 있다. 대통령이 노동자와 국민의 생명보호를 위한 강력한 의지를 갖고 실천할 때 비로소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 완성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산업화는 수많은 노동자의 목숨과 희생으로 이뤄진 것이다.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지도자와 기업의 참회까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이제부터라도 억울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더 이상 노동자를 희생시키는 대통령이 아닌 노동자를 보호하고 아끼는 대통령이 돼 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노동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노동자가 행복해야 대한민국이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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