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규
전국비정규노조
연대회의
정책위원

2007년 이랜드그룹(홈에버·뉴코아)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걸고 투쟁을 전개했을 때, 비정규악법 시행을 앞두고 전면 외주화를 준비하던 유통자본이 반대로 ‘무기계약 전환’에 나섰다. 롯데마트를 비롯해 1만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 대상이었다. 반쪽짜리 고용보장에 불과했지만, 자본은 이랜드 투쟁의 불씨가 자기 현장으로 퍼질 것을 두려워했다. (다수는 아니라 할지라도) 무기계약으로 전환된 다른 유통사 비정규직의 일부는 이 조치가 이랜드 투쟁 덕택임을 잘 알고 있었다.

민주노조운동, 미조직 사업장 누볐다면?

6년이 지난 오늘, 이마트 불법파견 판정 후 ‘1만명 정규직화’로 유통산업 비정규직 문제가 다시 관심에 올랐다. 안타깝게도 이번 조치와 현대자동차 비정규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투쟁은 큰 연관이 없어 보인다. 박근혜 정권과 자본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조직 노동자들은 철저히 배제하고, 일부 미조직 비정규직에게 시혜성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괜히 노동조합 해 봐야 당신들만 손해다. 참고 기다리면 정부와 회사가 알아서 해 주겠다.”

현실주의자가 되더라도 가슴에는 불가능한 꿈을 품어 보자. 이마트 불법파견 판정이 내려질 때 민주노조운동의 핵심 조직화 역량이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미조직 사업장을 누비며 “부당행위 신고해 달라. 여러분에게는 이러저러한 권리가 있다”는 명함을 수만 장 살포하고 대화를 시도했다면?

이마트가 1만명 정규직화 조치를 발표할 때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이 “이건 가짜 정규직화다. 법에 의거해도 여러분은 단 하루만 불법파견으로 일해도 그날부터 정규직 처우를 받아야 한다. 노조에 가입해 함께 싸우자”는 선전전을 벌였다면?

단시일 안에 조직화까지는 힘들더라도 자본은 이런 행위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뭔가 더 나은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미조직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이런 조치들이 (정부와 회사의 시혜성 조치가 아니라) 결국 민주노조운동의 역량에 의해 이뤄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투쟁에 나선 조직노동자들 역시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노동정책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다. 여러 견해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박근혜 정부가 조직노동자 배제전략을 유지하되, 미조직층을 직접 대면하는 방식으로 조직노동자를 전면 고립시키는 방책을 쓸 것이라는 점이다. “참고 기다려라. 가난한 노동자들의 문제, 언젠가는 정부가 해결하겠다. 노조 같은 허망한 희망을 접어라.” 조직노동자들이 자신의 안위만을 지키려 해서는 백전필패다.

미조직 전략조직화 사업 시작해야

박근혜 정권하에서 조직노동자들이 미조직층으로 운동을 확대하려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사실 그렇게 해야만, 미조직층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흡수해야만, 현재 바닥까지 침체해 있는 조직노동자들의 운동도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될 것이다. 아울러 고령화되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을 훨씬 젊게 만들어 줄 것이다.

7기 민주노총 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관심도 떨어지고 활력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미조직 전략조직화 사업, 여기에서 민주노총이 컨트롤타워를 제대로 세우고 역량을 총동원하지 않는다면 조직노동자 고립을 피할 수 없다. 그저 과거의 유산을 승계하고 한계를 바로잡겠다는 선언으로는 돌파가 불가능하다. 완전히 새롭게 다시 써야 한다.

그 방향 중 하나로 ‘전략조직화’의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역량과 재원을 집중하는 방안과 함께 이 운동에 조직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운동을 구성하는 것을 꿈꿔 본다. 사실 그렇게 불가능한 꿈도 아니지 않는가. 지난해 공공노조 서경지부 조합원들의 집단교섭과 최저임금 투쟁이 벌어질 때 현대차·기아차와 부품사 정규직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사무금융 정규직 노동자들의 자발적 운동으로 1천원씩을 모금해 “생활임금 쟁취” 선언운동을 전개해 1만명의 서명으로 경향신문 하단광고를 낸 적이 있다. 조직노동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최저임금 투쟁에 작은 힘이라도 보탤 때 미조직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들에 대해 한 번이라도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스스로의 임금투쟁에도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게 되는 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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