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는 고등학교 중퇴인 형과 중졸인 형이 있는데,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지 못했던 지혜를 얻곤 한다. 나의 전공이라 할 정치학의 주제를 이야기할 때도 그렇다. 지역주의 정치에 관한 박사논문을 쓰면서 문제가 안 풀려 답답해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형들과의 대화를 통해 돌파구를 얻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난해 대선 결과를 두고 야당과 진보정치에 대한 실망을 말하는 내게 둘째 형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는 거 아녀. 그렇게 쉽게 좋아질 것 같았으면 세상 뭐 문제가 있겠냐. 차분하게 생각해. 모든 게 좋아질 때가 돼야 좋아지는 거여”라는 말을 해 준 적이 있다. 곰곰이 돌아보니 맞는 말이었다. 건설적 준비와 충분한 노력의 중요성을 필자가 경시했다는 생각도 들었고, 탓만 하면서 냉소한 것은 아닌지 반성도 했다.

민주주의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갖는 한계와 위대함에 기초를 둔다. 때로 사사로운 편견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사회정의나 공익보다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먼저 생각한다 하더라도, 누구든 평등한 시민권을 갖는 민주주의 체제가 그렇지 않은 체제보다 윤리적으로나 실제 결과에 있어서나 우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선택은 보통의 시민들에 기초를 둔 체제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시대정신이나 민족공동체의 이상, 나아가 역사발전의 최종적 목적지를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주도한 체제에서 이뤄졌다. 민주주의 체제가 제 아무리 시끄럽고 기대만큼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보통의 시민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 수 있는 조건과 가능성을 넓힐 수 있다는 사실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흔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민주주의가 잘되고 안 되는 것의 책임을 시민에게서 찾는 데 있다. “정치의 수준은 그 나라 시민의 수준이 결정한다”며 “시민들 수준이 이런데 뭘 더 바라냐”는 힐난이 대표적이다. 시민의 각성을 강조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이 돼야 한다거나 "개념시민"을 치켜세우고 스스로 "행동하는 양심"임을 과시하는 것도 유사한 태도라 할 수 있다. 시민을 가르쳐서 민주주의를 좋게 하려는 접근이 과도하면 인간의 실제 현실 속에서 좌절하기 쉽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필자는 시민 개개인의 각성 내지 시민교육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주의 체제의 운명을 거기에 걸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의 평범한 보통 사람들, 그들의 경험세계와 의식세계에 존재하는 현명함에서 배울 것도 많고, 때로 그들의 평범한 관점이 그 어떤 철학자나 개념시민의 편향된 판단보다 훨씬 더 나을 때가 많다고도 본다. 판단의 옮음을 독점할 수 있는 사람이나 세력이 있다고 믿지 않으며, 그래서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세계에서 좋은 정치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더 많이 생각했으면 한다.

진보정당에 가입하려는 생각으로 지역모임에 갔다 와서는 거기에 자기가 끼면 뭔가 어색할 것 같아 포기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심정을 필자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보수는 스스로를 보수라고 내세우지 않는 데 반해 진보쪽 사람들은 진보적임을 앞세우는 일을 즐기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것도 금방 이해됐다. 학생운동 관련 이력을 말할 때만 얼굴에 빛이 나는 진보파들을 가끔 보는데, 그런 대화 속에서 “진보 우월주의”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했으면 한다. 그보다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세계가 갖는 풍부함을 이해하고 그곳에서 편안하고 익숙하게 대화할 수 있는 진보파가 나날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그렇게 천천히 그 길을 개척하고 넓히다 보면 어느 순간 진보도 주변부의 위치를 박차고 나와 한국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한다.

오늘로서 필자의 칼럼 연재를 마친다. 모두에게 감사한다. 우리 스스로를 격려할 겸해서 존 레전드의 노래 ‘Ordinary People’을 선물하고 싶다. 가사 가운데 “당신(you)”을 민주주의나 진보정치로 바꿔 들어도 좋겠다.

“내가 사랑에 빠진 너. 그건 신혼의 단꿈은 아니지. 지난 시절의 열정만도 아니고. 우리는 지쳐 매일처럼 말다툼을 했지. 내 잘못 알아. 너도 잘못을 했고. 우리 모두 성숙해져야 할 부분이 있어. 우린 사랑 때문에 서로 상처를 받았지만, 난 여전히 네가 우선이야. 서로의 사랑을 지키고 싶잖아. 하지만 난 우리가 서두르지 않았으면 해. 우린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니까.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린 평범한 보통사람들이니까. 아마 우리는 천천히 사랑을 키워 가야만 할 거야. 이번엔 우린 서두르지 않을 거야. 이건 영화가 아니잖아. 동화 같은 결말도 없어. 매일 혼란스러워. 그게 종종 우릴 기쁘게 하고 지옥에 떨어지는 심정을 갖게도 하지. 서로 입 맞추고 계속 나아가도록 화해하기도 하고. 내가 전화를 끊으면, 당신이 전화를 해. 다시 가능성의 순간이 올 거야. 당신이 내 곁에 있어 주길 바라. 우린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니까.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린 평범한 보통사람들이니까. 아마 우리는 천천히 사랑을 키워 가야만 할 거야. 이번엔 우린 서두르지 않을 거야.”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parsh03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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