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답답해요. 박근혜 정부라서 답답한 게 아니라 우리 내부 때문에 답답한 거죠. 실패할 줄 알면서도 당위성 때문에 반복하는 투쟁을 하고, 그게 다시 우리 발목을 잡고…. 답답합니다.”

신환섭(49·사진) 민주화학섬유연맹 위원장은 요즘 답답하다. 이명박 정부가 이름만 바뀐 박근혜 정부로 다시 출범해서가 아니다. 실패할 줄 알면서도 당위성 때문에 실패한 길을 답습하는 노동운동 내부가 답답해서다. 민주노총으로 신규노조 상담이 꾸준히 들어오지만 열에 아홉이 실패하는 현실을, 언제까지 악덕 사용자 탓으로 돌려야 하는지 답답하다.

그래서 신 위원장은 기초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창조컨설팅은 몇 년 전부터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만들어 전국 곳곳에서 노조를 깨고 다녔는데, 정작 노조는 이에 대응하는 매뉴얼조차 없다. 고릿적 노조활동 매뉴얼부터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 연맹 사무실에서 신 위원장을 만났다. 화섬노조 재선 위원장인 그는 올해 1월 화섬연맹 위원장에 당선됐다. 화섬노조 출범 이후 처음으로 산별노조와 연맹 간 통합지도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신 위원장은 “올해는 중단됐던 제조산별에 재시동을 거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LG 계열사 빼고 산별전환 마무리

연맹의 조합원수는 1만4천210명이다. 이 중 화섬노조 조합원은 6천23명으로 절반에 못 미친다. 그러나 단위 사업장수로 보면 연맹 소속은 20곳, 노조 소속은 70곳으로 산별전환이 80% 가까이 마무리됐다. 산별 미전환 사업장 20% 가운데 절반은 LG화학·코카콜라음료 같은 LG 계열사다.

신 위원장은 “올해 LG 계열사를 제외한 모든 사업장에서 산별전환을 추진할 것”이라며 “일단 가능성 높은 사업장부터 산별전환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화섬연맹은 큰 조직이 아니어서 굳이 노조와 연맹을 분리할 필요가 없어요. 당초 그렸던 상은 대산별인데, 과도체제라도 산별노조다운 사업을 해 보자고 분리해서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잘 안 됐죠. 우리 조직은 편차가 심해요. 연봉 1억원이 넘는 석유화학 사업장부터 최저임금만 겨우 받는 영세사업장까지 모여 있다 보니 집단교섭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연맹과 노조가 올해 통합지도체제를 구축한 이유다.

조만간 금속노조와 제조산별 논의기구 구성

신 위원장은 “복수노조 때문에 예전보다 산별전환이 쉽지 않은 조건”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사업장에서 공세적으로 조합원을 설득하면서 산별전환을 추진했지만 지금은 대단히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그는 “산별전환을 빌미로 회사가 언제든지 현장을 둘로 쪼갤 수 있어, 반쪽짜리 산별전환에 그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연맹은 금속노조와 함께 올해 제조산별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금속노조도 사업계획에 제조산별 추진을 포함시킨 상태다. 신 위원장은 “조만간 금속노조와 제조산별 추진을 위한 논의기구를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조직은 2009년에 통합 논의를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대해 신 위원장은 “올해는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2009년과 올해는 달라요. 왜냐구요? 우리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죠. 과거에 통합논의를 할 때 규모 면에서 (금속노조와) 너무 차이가 나니까 (화섬연맹이) 그냥 들어오면 되지 굳이 논의를 해야 하나 이런 시각이 있었거든요. 서운했죠. 그런데 요즘은 제조업이 전부 힘들어요. 뭉쳐야 살죠. 그래서 전보다는 통합논의가 잘될 거라고 봅니다.”

신 위원장은 “제조산별 통합 과정에서 연맹이 특별히 요구하는 것도 없고, 주도권을 행사할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다만 화섬연맹이 사라져도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섬유와 고무, 화학산업에서 출발했던 역사는 잊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문제는 소통, 원점에서 출발할 것”

신 위원장은 연맹 임원선거 과정에서 ‘현장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이기는 싸움을 하려면 현장과 소통해야 합니다. 현장과 소통이 부족하면 아무리 투쟁해도 현장을 잃게 돼 있어요. 복수노조가 허용되기 전에는 잘하든 못하든 현장을 빼앗기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준비되지 않은 채 어설프게 당위성에서 투쟁을 시작하면 결국 현장을 빼앗깁니다. 우리 내부부터 정확하게 진단하는 게 중요해요.”

신 위원장에게 박근혜 정부는 박정희 정권의 부활을 뜻한다. 민주주의도 노동운동도 과거보다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더 큰 위기는 내부에 있다고 신 위원장은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노조 조직률이 10%대 이하로 떨어지고 민주노총 조직률도 뒷걸음질쳤어요. 노조를 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아니요. 그것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신규노조 상담이 들어와도 90%가 실패합니다. 회사는 용역깡패까지 동원해서 노조를 깨려고 혈안인데 우리는 이에 대응하는 매뉴얼조차 없어요. 새로운 노조활동에 대한 매뉴얼이 필요합니다.”

그는 요즘 기분 좋은 변화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 열린 연맹 중앙위원회에 중앙위원 21명 중 19명이 참석했고, 늘 저조했던 대의원대회도 참석률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연맹에 통합지도부가 들어섰다고 해서 현장의 기대가 커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로 답답하니까 돌파구를 찾기 위해 모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회의를 할 때마다 성원이 될까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남은 문제들도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프로필] 신환섭 위원장은

전북 익산에 위치한 한국세큐리트 익산노조 위원장을 97년부터 2003년까지 역임했다. 2008년 화섬연맹 전북본부장을 거쳐 2009년부터 화섬노조 위원장을 맡고 있다. 올해 1월 치러진 화섬연맹 임원선거에 신환섭-신귀섭-임영국(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처장) 후보조로 단독출마해 72.2%(104명)의 지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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