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25일 국회에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다. 박근혜는 제18대 대통령선거의 당선자에서 대통령으로 신분이 변경됐고, 대한민국 국민은 박근혜 정부 5년을 맞이하게 됐다. 박근혜는 이명박·노무현·김대중·김영삼·노태우 등 전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는 취임 선서를 하고서(제69조)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박근혜는 대통령으로서 국민행복, 희망의 새시대를 열겠다고 취임사로 밝혔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새로운 권력이 들어섰다. 이제 이 나라 노동운동은 박근혜 정부 아래서 노동자권리를 위해서 활동하고 투쟁해야 한다. 권력이 국민행복과 희망의 새시대를 여는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다짐하는 오늘, 노동운동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2.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이 나라 노동운동은 인수위와 박근혜 당선자를 상대로 요구를 전달하고 그 해결을 촉구해 왔다. 민주노총은 5대 현안, 10대 요구로 정리해서 제기했고 대통령 취임을 앞둔 지난 23일에는 그 해결 촉구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5대 현안은 긴급한 노동현안들로 ‘1. 한진중공업 손해배상 철회와 열사 명예회복 및 유족 보상 2. 쌍용자동차 국정조사 실시와 해고자 복직 이행 3.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4. 유성기업 사용자노조 해산 및 노조파괴 중단 5. 공무원 및 공공부문 해고자 복직’이다. 10대 요구는 그 동안 민주노총이 주요 과제라고 내세워 온 요구를 정리한 것이다. ‘1. 57개 투쟁사업장 문제 해결과 해고자 원직 복직, 구속노동자 석방·사면복권 2.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3. 공무원노조, 건설노조, 운수노조 설립 신고증 교부, 교사 공무원 노동3권과 정치기본권 보장 4. 노조 전임자임금 금지 제도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폐지, 산별교섭권 강화 5. 공공부문 민영화(매각·시장화·민간위탁·경쟁체제)정책 폐기, 의료 민영화정책 폐기와 영리병원 중단 6. 유통산업근로자 보호법 제정 등 비정규·취약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 7.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기도 진상규명과 해고자 복직 8.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약속 이행과 사내하도급법 폐기 9. 국립대 재정회계법 저지와 대학 시간강사법 폐기·연구강의 교수제 도입 등 대학관련 현안 문제 해결 10. 손배가압류·공격적 직장폐쇄·단체협약 일방해지 등 노동탄압 중단과 정리해고 중단’이다. 한편 한국노총은 일자리 창출, 대화와 상생의 노사관계 구축 등 수많은 노동 문제를 풀어 내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노동계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인수위 당시부터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 수립과 집행에 노동계의 참여를 주장해 왔다. 지난 22일 당선자로서 박근혜는 한국노총을 방문해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일자리와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대화와 상생의 노사관계가 필요하다”면서 “합리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 언제든 만나 대화를 가질 것이며, 한국노총과 항상 끊임없이 소통하고 문제점과 애로를 해결하는데 각별히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아직 대통령의 임기를 시작하지 아니한 당선자의 인수위 시기에서부터 이렇게 이 나라 노동운동은 요구해서 활동했다. 그리고 그것은 박근혜 정부에서 이 나라 노동운동이 어디로 향해 갈지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러한 방향으로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이 전개될 것이 분명하다. 민주노총은 몇 대의 현안과 요구를 권력에 전달하고서 그 해결을 촉구하면서 결의대회·총력투쟁 등을 전개할 것이다. 한국노총은 노동정책의 수립 등에 노동계가 참여하는 노사정 등의 사회적 대화를 주장하면서 이를 위해 성명을 발표하고 박근혜 정부의 태도에 따라 투쟁과 협력 사이를 오갈 것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민주노총과 연대할 것이다. 조금도 새로울 게 없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길이었다. 그 동안 이 나라 노동운동이 전개해 왔던 방향이었다. 그러니 박근혜 정부 아래의 노동운동이라고 뭔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국민행복, 희망의 새시대를 열겠다고 취임사로 다짐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를 맞이하는 이 나라 노동운동은 새롭게 뭘 다짐할 일도 없이 그저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활동하고 투쟁하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3. 취임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과 성장을 위한 창조경제, 공정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경제민주화를 추진해서 경제부흥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했다. 노후가 불안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 될 수 있도록 복지로 국민행복시대를 만들며 국민 모두가 문화가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문화융성을 이뤄 내 국민행복, 희망의 새시대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일자리·성장·경제민주화·복지·문화 등이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언어로 국민에게 바쳐졌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거창하게 국민에게까지는 아니라도 노동자에게 무엇을 바치고 있는 것일까. 앞에서 5대 현안은 한진중공업·쌍용자동차·현대차사내하청·유성기업·공무원 및 공공부문 등으로 주요 현안 사업장에 한정되고 있다. 10대 요구는 해고자·구속노동자·비정규직·특수고용노동자·공무원·교사·언론장악·민영화·대학 등 대부분 특정부분 노동자의 문제들이다. 그걸 제외하면 노조전임자 임금금지와 교섭창구 단일화의 폐지, 산별교섭권, 노동탄압과 정리해고 중단이 노동자 일반의 문제들이다. 노동계가 노동정책 수립에 참여하는 것은 노동자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노동계의 요구를 보면 그저 현안사업장과 특정부문 노동자의 문제에 집중돼 있고 권력의 노동정책의 수립 등에 참여토록 해 달라는 것에 그치고 있다. 이렇게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은 전체 노동자의 요구를 내걸지 않고서 노동자대회 등 결의대회를 하고, 총력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자 일반의 노동기본권 행사의 자유를 확보하겠다는 것을 이 나라 노동운동은 자신의 요구로 하고 있지 않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노동자 일반의 노동기본권 행사를 온통 제한하고 금지하고 있음에도 그것이 이 나라에서는 노동운동의 요구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저 특수고용노동자 등의 노동기본권 자유를 외치고 있다. 어찌된 일일까. 임금·근로시간 등 노동자 일반의 권리는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의 요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건 노조가 사업장단위에서 교섭과 투쟁으로 단체협약으로 확보하고 있으니 긴급한 현안도 당면한 요구도 아니라고, 이 나라 노동운동은 그것이 요구가 되지 못한다고 제외해 오고 있는 것이다. 긴급하고 당면한 요구를 내세워야 하니 나머지는 그걸 해결한 다음의 요구라고 언젠가의 요구로 취급돼 왔다. 그래서 노동운동은 자신의 언어로 노동기본권 행사의 자유, 노동의 권리로서의 임금과 근로시간 등은 이 나라 노동자에게 바치지 못했다. 아니 그걸 바치겠다고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다짐하지도 못해 왔다. 노동운동이 노동자 일반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 전개되지 않는다면 노동자는 노동운동에 그걸 기대하지 않게 된다. 이때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권력이 일자리든 복지든 뭐든 자신의 구호로 외친다면 그것에 기대하게 된다. 노동운동의 활동가·간부가 아무리 노동자에게 그 권력이 보수냐 민주냐 진보냐로 적과 동지를 가르라고 해 봐야 소용없다.

4.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오늘, 다시 이 나라 노동운동을 묻게 된다. 노동운동은 노동자 일반의 자유와 권리를 자신의 요구로 해야 한다. 만약 그것을 노동운동의 요구로 하지 않는다면 그건 권력후보자의 공약이 되고 권력의 취임사가 되고 만다. 물론 노동자 스스로 그 자유와 권리를 쟁취해 낼 무기, 노동기본권 행사의 자유는 포함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보수든 민주든 그들의 권력을 대체할 노동운동의 성장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어찌될 것인가. 앞으로 5년 동안 국민을 위한다는 권력의 말을 이 나라 노동자들은 자신을 위한다는 말로 들을지 모른다. 지금 이 세상에서 일자리·경제민주화·복지는 노동운동의 전용어가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건 자본과 권력의 언어로 사용돼 왔다. 또한 그것이 노동자를 위한 언어로 사용하는 정도는 노동운동의 세기에 의해 결정돼 왔다. 인간의 역사에서 노동운동이 강력할수록 일자리·경제민주화·복지는 노동자를 위한 것으로 표현됐다. 그리고 보수의 권력이라도 노동자권리를 자신의 구호로 내세워 왔다. 노동의 권력이어야 노동자권리를 이 세상의 권리로 만들어 왔던 것은 아니다. 자본의 세상에서 인간의 역사는 그걸 노동의 권력이 아니라도 자본의 편이라는 그들이라도 자신의 구호로 했고 그걸 이 세상의 권리로 만들어 왔다는 걸 보여 줬다. 그러니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지켜보면서 이 나라 노동운동은 어째야 하겠는가.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운동은 스스로 이 나라에서 노동자행복, 노동자의 새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그것을 국민행복, 국민의 새시대를 열겠다는 권력의 다짐으로 대체되도록 해선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은 노동운동이 헌법 제69조의 대통령 취임 선서와 취임사 앞에서도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는 이 나라 노동자가 헌법 제33조의 자주적인 노동기본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걸 망각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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