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현안 해결을 촉구하며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철탑과 다리 위에 매달려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벌써 100일을 훌쩍 넘긴 곳도 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은커녕 농성장 강제철거 소식만 이어질 뿐이다.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활동 막바지에 접어든 7일 현재까지 노동자들의 대화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반면 법원과 지방자치단체·경찰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농성장을 철거하고 농성자들을 강제구인하는 실정이다. 이달 25일 출범을 앞둔 박근혜 정부 노동정책의 예고편이라는 우려가 높다.

◇부서지는 농성장, 끌려가는 노동자=노동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 영등포구청은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 설치된 공무원노조와 금속노조 쓰리엠지회 천막농성장에 대해 "이달 12일까지 자진철수하지 않으면 강제철거하겠다"는 내용의 계고장을 통보했다. 공무원노조는 지난해 10월부터 해고자 복직과 공무원노조 설립 인정을 요구하며 130일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25일 국회에서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다는 이유로 그 이전에 농성장을 철거하겠다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달 6일에는 전북 전주야구장 조명탑 위에서 34일째 농성 중인 택시노동자의 농성장과 망루에 대한 행정대집행이 실시됐다. 전주시는 공무원 150명을 투입해 전주종합운동장의 천막과 현수막, 철골 구조물을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택시노동자들은 같은날 오후 철거된 현장에 천막농성장을 다시 설치했다. 행정대집행에 항의하는 뜻으로 또 다른 노동자가 고공농성에 나섰다. 이날로 34일째 고공농성 중인 김재주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천일교통분회장에 이어 임용모 노조 택시지부 전북지회장이 농성에 합류했다. 임 지회장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여기서 살아서 내려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부당해고 철회와 노조인정, 전액관리제 시행을 요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법을 지켜 달라는 것이다.

하루 전인 5일에는 인천 삼산경찰서가 콜트악기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공장에서 농성을 벌이던 13명의 노동자와 문화예술인을 연행했다. 현대자동차 송전탑 고공농성장의 경우 설 연휴 기간에 충돌이 예상된다. 현대차가 철탑농성장 강제집행을 휴일과 야간에 해 달라고 낸 추가 강제집행 신청을 울산지법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노무현·이명박, 당선자 시절 노동계 직접 방문, 박근혜는?=박근혜 인수위의 이런 행보는 과거 인수위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16대 인수위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2003년 2월13일 양대 노총을 각각 찾아 두 시간 넘게 간담회를 진행했다. 당시 현안이었던 주 5일제 등 노동정책과 노사관계에 대한 당선자의 입장을 밝히고 노동계의 의견을 진지하게 청취했다. 16대 인수위에 권재철 전 사무금융연맹 부위원장·김영대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 노동계 인사가 포진해 민주노총과 상시적인 대화채널을 가동했다.

17대 인수위에서는 이명박 당선자가 한국노총을 방문해 정례정책협의회 운영을 비롯한 현안을 1시간 가까이 논의했다. 이 당선자는 민주노총도 방문하기로 하고 날짜까지 확정했다. 그런데 당시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불법시위 혐의와 관련한 경찰의 출석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방문을 취소했다.

박근혜 인수위에서는 이런 움직임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인수위원인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이 지난달 29일 문진국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나고, 이달 6일 백석근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을 면담한 게 전부다.

한국노총은 노동계와 정부가 소통해야 한다는 요구를 전달했다. 민주노총은 한진중공업 문제를 비롯한 노동현안 해결을 요구했다. 김미정 민주노총 정책기획실장과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실무협의 창구를 운영하면서 해결책을 찾기로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 취임 전까지 산적한 노동현안을 해결하기는 난망해 보인다. 노동계 전문가는 "이명박 대통령도 당선자 시절에 노동계와 소통하는 창구를 만들었는데, 박근혜 당선자는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향후 5년간 노동현장이 참혹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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