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 결과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결정문 문구 조정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인권위의 해명인데, 인권단체들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눈치를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31일 인권위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최근 전체회의에서 직권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인권위 위원들의 검토를 거쳐 결정문 문구를 조정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조만간 브리핑이나 보도자료를 통해 결정내용을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직권조사 결과의 대략적 내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제도개선을 권고하는 내용”이라며 “말로 설명할 경우 국민들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어 더 이상 설명이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지난해 4월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에 나섰다. 사찰 피해를 당한 민간인들이 낸 피해구제신청을 각하했던 인권위는 ‘늑장조사’라는 비판 속에 조사를 시작했다. 9개월여간 진행된 조사는 이달 28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최종 결론에 도달했다.

인권단체들은 인권위가 어느 정도 수위의 결정을 내놓을지 주목하고 있다. 국가기관이 나서 국민을 감시한 중차대한 인권침해 사건인 만큼 인권위가 사건 책임자에 대한 처벌과 재수사를 포함한 강도 높은 권고를 내놓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 만큼 인권위가 결정사항 공개를 미루는 것에 대해서는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다. 오영경 새사회연대 사무처장은 “결정문이 나오기 전이라도 결정내용의 윤곽 정도는 공개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인권위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도개선 내용이 포함됐다’는 정도만 밝힌 상태”라며 “인권위가 재발 방지 수준의 무의미한 결론을 내놓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인권위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생색내기용 결과 발표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다. 실제 인권위는 민간인 사찰 사건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현병철 인권위원장은 지난해 6월 해당 사건의 피조사대상기관일 수도 있는 청와대에 직권조사 방침을 알려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면서 국회의 직권조사 현황파악 요구에는 응하지 않았다. 인권위는 민간인 사찰 관련 검찰의 재수사와 재판에도 개입하지 않는 등 소극적 행보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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