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홍
한국노총 산업
안전보건본부
국장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전자에서 노동자가 사망했다. 아니 살인을 당했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지 모르겠다. 이번 삼성전자 반도체 화성공장의 불산 누출로 인한 사망사고는 우리나라 기업의 안전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글로벌 기업·초일류기업·녹색기업이란 탈을 쓴 채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앗아 간 살인행위을 저지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보인 모습은 허술하기 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추악하기까지 했다.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했음에도 25시간 동안이나 관계당국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사고를 축소·은폐하려고 한 것이다.

사고 발생 직후 협력업체인 STI가 수리를 시작할 때까지 장시간 동안 누출 부위를 비닐봉지로 막아 놨다고 한다. 불산이 누출됐음에도 직원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에게도 불산 누출사실을 알리지 않고 대피령 또한 내리지 않았다.

불산은 반도체의 주원료인 실리콘 웨이퍼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녹이거나 세정하는 데 사용된다. 피부에 묻으면 심한 화상을 입을 수 있다. 기체 상태에서 흡입할 경우 기도에 출혈성 궤양과 폐수종을 일으킬 수 있는 맹독성 화학물질이다.

만약 삼성전자가 불산 누출이 발생한 즉시 관계당국에 신고하고 올바르고 신속한 대책을 마련했다면 노동자가 사망하고 부상을 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고는 불산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안전보건 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삼성의 살인행위다. 이를 축소·은폐하려 한 것은 반인륜적·반사회적인 범죄다.

삼성전자는 사고가 외부에 알려진 지난 28일 “유출된 불산은 2~3리터의 극미량이어서 별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으나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불산 누출 피해자들은 “27일 사고현장에 도착해 보니 불산 탱크 밸브 누출지점을 임시로 막아 놓은 비닐에 불산이 흘러넘치고 있었다"고 29일 진술했다. 경찰이 이날 확인한 사고현장 안 CCTV 화면에서도 희뿌연 연기가 바닥을 뒤덮어 앞이 탁해질 정도로 상황이 급박했다. 환경부는 불산 누출량을 약 10리터로 추정했다. 그러나 더 많은 양의 불산이 누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는 마치 노동자가 방제복을 입지 않아 숨진 것처럼 발표하면서 사망의 책임을 개인의 안전보호구 미착용으로 축소하려는 의도를 나타냈다. 만일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삼성전자의 불산 누출사고는 영원히 묻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한 가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삼성전자에서 불산을 비롯한 독성이 강한 물질이 누출됐더라도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지속적으로 은폐가 이뤄졌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삼성전자 작업장에서 근무한 노동자 중 56명이 백혈병·뇌종양·유방암·자궁경부암·피부암 등으로 숨지는 등 전체 산업재해 피해자가 160여명에 이르고 있다. 만약 누출사고 등에 대한 은폐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면 피해자 외에도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더 많을 것이다.

정부는 과거 삼성전자가 또 다른 화학물질 사고를 은폐했는지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삼성전자 사업주를 즉각 구속하고 사법부는 다시는 이러한 발생하지 않도록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할 것이다.

삼성전자 또한 자신의 작업장에서 근무했던 모든 노동자를 대상으로 건강조사를 실시해 피해자를 찾아내고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보호를 위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할 때만이 삼성전자는 진정한 초일류 기업이 될 수 있다.

최근 유해화학물질의 취급을 하청업체에 전가하는 기업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원청기업의 안전보건 의무 소홀로 인해 하청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권이 위협당하는 현장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삼성전자와 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유해화학물질 취급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보호를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제28조 유해작업 도급금지 조항에 유해화학물질 취급작업이 포함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위험한 일을 더 이상 하청노동자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하청업체에 대한 원청의 안전보건 책임을 강화하고 이를 위반했을 경우 처벌 또한 강화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안전한 사회’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안전보건 위반 사업주에 대한 강력하고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범죄 사실을 은폐하려는 기업은 단호하고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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