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 누구보다 투쟁사업장에 열심히 연대해 왔고 다른 이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희망을 주던 비정규 노동자였다. 이렇게 앞서서 투쟁하는 이들이 하나둘 세상을 등질 때 많은 노동자들의 마음에는 피멍이 든다. 긴 해고투쟁에 시달리며 점차로 말라 가는 이들, 가장 앞장서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과 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꿈꾸고 싸워 왔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지쳐서 결국 삶의 끈을 놓아 버리는 이들을 보며 많은 이들이 두려움을 갖는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죽음이 없기를, 모두가 살아서 현장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다시 재능교육을 돌아본다. 기륭전자의 투쟁기간 1천895일을 넘기기 전에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며 1천869일째 투쟁하는 동지들이다. 이제는 하루하루를 세는 일도 무심해지고 농성장이 집보다 더 익숙해진 이들이다. 긴 시간을 농성장과 길거리에서 보냈고, 회사측이 가한 폭력 속에서 버텨 왔다. 재능교육은 교육기업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용역깡패들을 동원해서 여성조합원들에게 성희롱을 해 댔다. 심지어는 손배·가압류로 노동자들을 괴롭히고 압류딱지를 조합원들의 집에 붙이는 등 파렴치한 일을 지속했다. 이 속에서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돼 가지만 그래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버티고 있다.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단체협약을 쟁취하기 위해 싸운다.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2000년의 파업투쟁으로 단체협약을 쟁취했다. 노동조합도 당연히 법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지난 10여년 동안 회사와 고용노동부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단체협약 적용대상이 아니라면서 권리를 빼앗았다. 그 노동조합 활동의 정당성을 다시 행정법원의 판결을 통해 인정받아야 하는 후퇴를 경험하고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당연히 ‘노동자’다. 이것을 투쟁으로 증명하기 위해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마지막까지 ‘단체협약’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회사는 싸움을 끝내고 나서 단체협약은 나중에 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특수고용 노동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맺었던 ‘단체협약’을 지켜 내는 것이야말로 전체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여 주는 것이기에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그 단체협약이 완전히 체결될 때까지는 싸움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해고자 전원복직을 위해 싸운다. 재능교육 회사측은 해고자 전원을 복직시키겠지만 싸움 중에 돌아가신 이지현 조합원의 명예복직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지현 조합원이 명예복직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다. 수많은 이들이 투쟁하면서 목숨을 잃었다. 용산에서 돌아가신 이들이 테러리스트가 아님을 이야기하기 위해 수많은 눈물과 투쟁의 날을 보내며 진상규명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기아자동차에서 돌아가신 사내하청 해고자 윤주형 동지가 정당한 노조활동이었다는 것을 인정받으며 명예를 회복하도록 싸워야 하는 것처럼, 돌아가신 분들의 염원을 이 땅에서 지켜야 하는 노동자들은 당연히 그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 ‘해고자’라는 이름으로 땅에 묻히지 않도록, 당당하게 싸웠고 그 힘으로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 노동자로 이름이 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살아남은 이들의 몫이다.

그리고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싸운다. 재능교육은 교육기업이고 일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그런데 재능교육은 이 노동자들에게 해서는 안 되는 짓을 저지른다. 회원들이 회비를 못 낸 경우 노동자들에게 대납을 강요하고, 가짜 회원들을 만들도록 몰아간다. 그래서 열심히 일한 노동자가 1천원도 안 되는 임금을 받아들게 되는 사태도 있었다. 교육기업이라고 이름을 붙여 놓고 용역깡패를 동원하고 성희롱을 마음대로 저지른다. 이런 기업이 어떻게 교육을 말할 수 있으며, 사회에서의 역할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이렇게 잘못된 이윤 중심의 구조를 깨기 위해 싸운다. 일하는 이들이 행복해야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고 더불어 사는 삶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는가.

긴 싸움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불의가 승리하도록 만들지 않기 위해 싸운다. 재능교육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너무나 먼 길을 달려왔다. 이 노동자들이 이겨야 100만명이 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권리에도 길이 열린다. 앞서 싸워 온 이들의 고통과 좌절이 새로운 희망으로 피어나며 이윤 중심의 사회에 제대로 경종을 올릴 수 있다. 그러니 이제 재능교육 노동자들이 이겨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모두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하지 않겠는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