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영
공인노무사
(노동건강연대
산재사망감시팀장)

서울 서초구청 청원경찰의 돌연사 사건으로 인터넷이 뜨겁다. 사실관계에 다툼이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날씨에 유일하게 몸을 녹일 수 있는 장소인 옥외초소를 걸어 잠그는 ‘비공식 징벌’은 청원경찰 노동자들에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심한 스트레스를 줬을 것이란 점이다. 22년 근속한 노동자에게 가해진, 그야말로 무식한 행위를 언급하기조차 부끄럽거늘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사람이 죽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을 떠올렸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교육을 가면 90%는 처음 듣는다고 한다-노동현장의 수많은 위험요소들을 사업주에게 제거하거나 주의하라고 강제하고 있는 숨어 있는 법이다. 사업주의 의무를 꼼꼼히 읽고, 산업안전보건규칙에서 ‘한랭’을 검색하다가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비인격적 징벌에 법이나 뒤척이고 있는 자신이 한심했다. “(사장) 당신은 처벌받아야 해” 따위의 말은 그냥 고함에 불과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당위 섞인 질문은 결국 하찮은 권위주의와 무너진 노동의 가치문제로 허탈하게 귀결되고 있었다. 아무런 고민도 양심의 가책도 없었던 행동에 비판인들 약이 될까.

이 사건과 동시에 떠오르는 사례. 캄보디아에서 온 농촌이주노동자. 그들이 살고 있는 비닐하우스엔 욕실도 없고, 화장실도 없다. 난방도 안 되는 그곳은 영하 2도다. 이미 그 ‘사람’에게 난방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없는 사업주는 차치해 두고, 문제해결을 위해 찾아간 고용노동부는 화장실에 대한 규정은 근로기준법에 없다고 했다. 입법청원을 하시라 했다. 난방이 안 되는 숙소 문제는 말도 못 꺼낸다. 힘겹게 돌고 돌아 찾아간 고용노동부였다. 인간 이하의 생활을 듣고 보고도 아무 대책도 안 내주고 돌려보낸다. 대체 누굴 찾아가야 하지. 새하얀 눈을 처음 본 이주노동자들에게 일터는 어떤 의미일까.

한겨울 한파에 가장 적극적으로 노출되는 노동자들은 건설노동자들이다. 영하 10~15도가 돼도 공사가 있으면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 그들. 일례로 콘크리트가 한파로 얼어 있다가 갑자기 날씨가 풀리면 바로 진행되는 무리한 공사로 빈번한 재해에 노출된다. 노동부에서 겨울이라고 유일하게 신경 쓰는 곳이 이 건설현장이다. (노동부의 수동성을 감안한다면) 그만큼 겨울이면 더 심각하게 죽고 다치고 병든다는 반증이다. 그럼에도 한겨울 혹한과 싸우는 전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감히 일손을 놓고 사업주와 싸워 보라 말도 못한다. 가혹한 노동현장을 거부하라 하지 못한다. 부끄럽지만, 몰아닥치는 한파 걱정 없이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나 같은 사람은 인생을 건 노동이 이뤄지고 있을 노동현장의 당사자가 아니니까. 그리하여 그냥 흘려들을 수도 없지만, 당장 해결할 묘책도 없는 사연들에 속상한 마음만 앞선다.

그래도 할 일은 있다.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본다. 세상에 현장을 보여 주고, 드러내고, 그곳의 힘겨움을 공감하는 것이 어쩌면 문제의 일터들을 바꿀 수 있는 토대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고발을 해 볼까. 위험한 곳을 제보받아 1인 시위라도 해 볼까. 뭘 해 볼까.

서초구청 청원경찰에게 비인간적 징벌을 한 자나, 영하의 온도에서 사람을 혹사하며 노동시키는 비닐하우스 농장주나, 산재공화국의 1등 공신 건설회사들은 아무런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여기저기서 말해야 바뀔 테니까.

서초구청처럼 죽은 사람 명복조차 안 빌고 사건을 알린 사람을 고소해 버리고 변명하기에 바쁠 수도 있지만, 무관심보다는 나으니까. 그래도 혹한에서 무방비로 일을 시키는 게 얼마나 나쁜 행위인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분노하니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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