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현 변호사
(민주노총 법률원)

새벽 3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크레인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 2003년 10월21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중에서… -


머리를 쥐어뜯으며 도저히 써지지 않는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지인의 블로그에서 정은임 아나운서의 오래된 방송멘트를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그녀가 2003년 가을,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 했던 것처럼 2013년 이 시각 우리에게도 ‘높이높이 올라간’ 조합원들이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출신 해고자 최병승씨와 금속노조 비정규직지회 천의봉 사무국장은 울산공장 명촌주차장 송전철탑에 올라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의 철탑 고공농성은 1월24일 100일을 맞게 됩니다.

전주야구장 조명철탑에 올라간 택시노동자도 있습니다. 천일교통 택시기사였던 김재주 분회장이 20여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데, 농성 중인 김 분회장은 회사측에 전액관리제 시행을 요구하다 해고돼 구제신청을 해 놓은 상태라고 합니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 송전탑에 올라 60여일째 고공농성을 이어 가고 있는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쌍용차 무급휴직자 455명의 일괄복직 합의소식에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기업노조 조합원 류모씨의 자살기도 소식에 “밤새 쾌유를 빌었다”고 합니다. 찢어지는 듯한 추위 속에서도 세상과 소통을 유지하고 있는 그는 아마도 국정조사와 해고자 복직이 이뤄질 때까지 내려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12년 12월19일 이후 선거 패배의 원인과 새 대통령에 대한 전망을 다루는 분석기사들이 매일 쏟아져 나왔고, 우리는 그 집단적 우울함에 한동안 허우적대야 했습니다.

구불구불 앞이 보이지 않는 좁은 길을 앞에 두고 힘들다는 말, 외롭다는 말이 목젖을 튕기는 지경이지만 스스로 높은 곳에 올라간 그들은, 그들을 올려다보는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개 숙이지 마요. 힘껏 젖혀 높은 곳을 보며 걸어요.”

들리지는 않겠지만 혼잣말처럼 되뇌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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