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최근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눈여겨본 적이 있다. 5년 전에 찍은 사진이었지만 아주 오래된 느낌의 그런 사진이었다. 2007년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촬영한 것이었다. 당시 유력 대선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이 전국택시노조연맹을 방문해 현안을 논의한 후 기념으로 촬영한 것 같았다. 연맹에서 대선후보에게 건의한 것 중 핵심은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도 반영하겠다며 흔쾌히 응했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어떤가. 지난 5년간 정부가 택시사업에 관심을 표명한 적이나 있었는지 의문이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택시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돌아본 적이 있던가. 참다못한 택시노동자들은 지난해부터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선거를 앞둔 시기에 노동자의 이익을 반영해 달라는 요구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대선후보들은 앞다퉈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 것을 포함해 대대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대선후보들은 택시노동자들과 일일이 악수했고 식사자리를 함께한 영상이 연일 보도됐다.

다행히 대선 직후 정치권은 약속을 지켰다. 이달 2일 여야를 아울러 222명에 이르는 국회의원들이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의 관한 법률 개정안(이른바 택시법)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택시노동자들의 숙원이 이뤄지는 듯했다. 입에 담기도 꺼려지던 “인생막장”의 일터가 “희망일터”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 희망도 잠시였다. 정부는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 택시법 재의결의를 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거기에 결재하고 말았다.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언론도 “복지예산도 부족한데 택시에 지원을 하다니, 여타 유사 업종에도 동일한 요구가 이어질 것”이라며 오랜만에 정부 편을 들었다.

그런데 정부·언론에서 나온 어떤 지적도 논리적이지 못하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정부의 재의요구는 자기모순이다. 스스로 한 약속에 대한 부정이다. 대선 공약으로 발표했으면서도 그동안 정부는 말로만 택시노동자의 어려운 삶을 알고 있다고 할 뿐 어떠한 해결책도 내놓지 않았다. 보다 못한 대선후보들과 정치권이 재실행을 약속했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사정이 이렇다면 어려운 사회적 의제에 대해 합의를 이끌어 낸 의회를 존중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제 와서 차기정부의 부담을 덜어 주겠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택시노동자들에게는 늦어도 너무 늦은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대중교통 정의 규정에 관한 논란에 대해서도 진실규정이 필요하다. 개정안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대중교통이 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노선과 운행시간, 불특정 다중이 이용할 것을 필요로 하는데 택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같은 태도는 스스로 만든 정의에 얽매이는 꼴이다.(필자는 대중교통의 도그마라 부른다)

정의가 만고불변의 진리인 양 떠받들 필요가 있는가. 특정 법률용어에 대한 정의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이제 택시와 대중교통과의 관계도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택시가 대중교통에 포함될 수 있는지는 택시를 업으로 하는 자와 택시를 이용하는 자들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 노선과 운행시간이 결정적 요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택시는 가장 편하고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버스와 지하철 못지않게 서민들의 발이 된 지 오래다. 비행기나 크루즈를 두고 대중교통이라고 인정하는 자가 어디 많던가.

이에 대해 해외 입법사례나 국제기준을 들먹이는 이가 있다. 선진국에서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한 예를 찾기 어렵다고 부연한다. 해외 상황이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해외와 우리 택시업계의 실정은 전혀 다르지 않는가. 선진국에선 택시가 고급교통일지 몰라도 우리에겐 가장 편리한 대중교통에 불과하다. 입법현실이 다르다면 제도설계도 그에 맞게 달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중교통의 국제기준을 말하기 이전에 택시노동자들의 삶이 국제수준에 이르렀는지 돌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이 법의 운명은 앞으로 있을 국회 재의결 여부에 달려 있다. 당연히 재의결되리라고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의회가 호도된 여론의 눈치를 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의회에 제안한다. 이 법이 택시노동자들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기존 의견을 유지해야 한다. 아울러 이번 일을 계기로 택시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을 꾸준히 개발하고 시행해 주기를 바란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94kim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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