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
공인노무사
(건설노조 법규차장)

두산그룹 계열사인 렉스콘에서 일하는 한 노동조합 간부의 이야기다. 콘크리트 믹서트럭(레미콘) 운전대를 잡고 하루 종일 운전하며 살아 왔다. 그는 노동시간 좀 줄이자고 회사에 요청했고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 데 앞장서 왔다. 그가 요구한 노동시간은 놀랍게도 오전 6시부터 저녁 7시까지다. 지금이 무슨 자본주의 초창기 영국도 아닌데 아직도 이런 요구가 있다니…. 이유는 간단하다. 레미콘 기사는 특수고용직이기 때문이다.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요구에 회사는 그 간부를 해고했다. 아니 해고가 아니라 계약해지했다.

레미콘 기사들은 회사의 일방적 지휘·감독 하에서 회사가 지시하는 시간에 맞춰 출근과 퇴근을 한다. 출근시간은 새벽 2시가 될 수도 있고 새벽 4시가 될 수도 있다. 퇴근도 마찬가지다. 자영업자라고 하지만 사용자측이 지시하는 작업만을 할 수 있다. 사용자의 지시를 위반할 경우 계약해지를 당한다. 계약은 1년 단위로 회사 주도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뤄진다. 계약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독자적 사업 가능성도 거의 없으며 작업과정에서 자신의 통제권도 없다. 특정 회사에 전속돼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쯤 되면 보수적인 한국 법원의 판례에 비춰도 레미콘 기사는 노동자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작업하는 콘크리트 믹서트럭이 해당 노동자의 소유라는 이유로 그들은 사장님이 된다. 심지어 법원은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실질적 지표인 사용종속 관계는 인정하면서도 형식적 지표에만 집착해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가 받는 온갖 혜택은 받지 못하며 차량 유지·보수비용 등은 개인이 부담한다. 월 실질소득은 13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또한 계약방식이 운반횟수로 보수가 지급되는 ‘탕뛰기’ 방식이다 보니 새벽부터 새벽까지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만성적 수면부족과 과로·피로에 시달린다. 당연히 레미콘 기사들은 매일 졸음을 참으며 운전하고 한 탕이라도 더 뛰려고 과속을 하게 된다. 2009년 교통안전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콘크리트 믹스트럭 교통사고 치사율은 일반 차량의 2.4배나 된다.

다행히 특수고용노동자 보호방안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커지면서 최근 몇 년 사이 국제노동기구(ILO)·국가인권위원회·학계·국민권익위원회 등에서 보호입법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다만 보호입법을 이루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특수고용직의 단결과 투쟁이다. 처음 논한 레미콘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일요일에 쉬게 해달라는 것이었고 회사측의 양보를 받아 냈다. 다음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했다. 위 간부의 해고에 맞서 인천과 부천지역 레미콘 차량 거의 전체가 멈춰 서는 파업이 일어났다. 이러한 연대와 단결의 힘이 사회적 압력이 돼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게도 온전한 노동권이 보장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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