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17일 정부 업무보고를 마무리했다. 지난 10일 국방부와 중소기업청을 시작으로 일주일 동안 46개 정부기관의 보고를 들었다. 업무보고 동안 인수위의 지나친 비밀주의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정책적 혼선을 주면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가 훼손된다는 이유였다. 야당은 "그냥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그냥 잠자코 기다려 달라는 말이냐"며 "밀봉 인수위"라고 비판했다.

이제 박근혜 정부의 국정로드맵 수립작업이 시작된다. 인수위는 “정부 업무보고가 종료되는 대로 대선공약 이행계획을 포함해 새 정부의 국정운영 청사진을 마련해 국정비전과 국정과제를 수립하는 구체적 절차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새 정부 로드맵의 초석이 될 업무보고, 노동계는 어떻게 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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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업무보고, 새 정부 공약도 못 따라가"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

인수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라 비중을 안 둘 수도 있는데,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이 제대로 안 나타났다. 새 정부가 경제민주화와 일자리, 복지를 중요하게 얘기했는데 중요한 보고에서는 중요한 내용이 빠진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산업 현장의 힘의 균형을 위한 노동권 보장이다. 요새 이마트 노동탄압 문제로 시끄러운데 이런 현안 문제에 어떤 태도를 취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입장이 빠졌다. 복지는 예산이 수반돼야 하는데 증세 없이 하는 것으로 돼 있다. 정부가 정책을 포기할 수 있다는 암시를 하기도 한다. 국민을 실망시키는 내용들이다. 믿고 지지했던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다. 일자리도 막연한 느낌이 든다. 정부는 공공부문이나 사회복지서비스 분야에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보고했을 뿐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중요하다. 2015년까지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하는데, 이를 민간으로 확대해야 성공할 수 있다. 정부 의지가 매우 중요한 것은 물론이다. 근로시간단축도 공약이 있었다. 여야가 같은 입장인데 임금피크제와 연동할 게 아니라 본래 취지를 살리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출발하는 자세를 가지기를 바란다.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그것만 강조하면 탁상공론이 될 수 있으니 현장에서 배워야 한다.


“공공부문 합리화, MB정부 브랜드만 바꿨나”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

이명박 정부가 ‘공공기관 선진화’를 내세웠다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공공부문 합리화’를 내걸었다. 공공부문 합리화를 통해 공기업 부채 문제를 강조하는 가운데 경상경비·사업비 절감, 기능조정을 통한 구조조정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공기업 독과점 폐지를 명목으로 경쟁체제 도입을 강조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이런 논리는 이명박 정부와 다를 게 없다. ‘공공부문 민영화’를 다른 단어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인수위는 각 부처에 대해 ‘산하 공공기관 합리화’ 방안을 보고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KT수서발 KTX민영화, 전력산업구조개편에 따른 송전-배전 분리, 가스산업 구조개편의 일환인 천연가스 재벌수입허용 등 사실상 민영화 정책이 발표되고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공공부문 민영화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태도와는 정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적 반발을 감안해 선거에서는 적당히 얼버무리고, 선거 후 말을 바꾸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 대해서도 정작 심각한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고용안정과 처우개선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또 실제 예산 반영과 법 개정 요구를 외면해 진정성을 찾기 힘든 ‘말의 성찬’이 무성하다. 박근혜 당선자는 이런 식의 태도로 ‘국민과의 신뢰’를 말해선 안 된다.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과 사회복지 확충을 위해 필요한 재정을 재벌과 부유층 증세를 통해 확보하지 않고, 공공부문 쥐어짜기로 대신하려다 보니 발생하고 있는 문제다. 공공부문 정책이 바로 조세정의와 경제민주화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부족한 복지공약마저 무너뜨리는 시도 우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복지 공약은 노조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게 사실이지만 과거의 주장과 비교하면 진일보한 측면이 분명 있다고 본다. 이를 테면 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 질환 등 4대 중증질환 진료비를 전액 국가가 부담하겠다는 내용 등이 그렇다. 문제는 재정대책이다. 벌써부터 가뜩이나 부족한 복지 공약을 놓고 업무보고에서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부처들이 반발하고, 인수위도 한 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새 정부가 재정 대책과 관련해서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려면 건강보험제도의 개편이 필요하다. 원칙은 적정 수가와 적정 보장성, 적정 부담이다. 보험료를 올리고, 비급여 항목을 없애 보장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물론 이를 실현하려면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영리병원을 포기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영리병원 허용은 곧 한국 의료복지의 후퇴로 이어진다. 사회적 대화의 전제조건은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비급여 항목을 없애는 것이다. 영리병원 허용은 그런 흐름과 정면으로 역행한다. 여기에 초기업 교섭을 활성화하는 것이 사회적 대화 성사의 첩경이 될 수 있다.


“교원평가에 대한 근본 철학부터 재검토해야”

송원재
전교조 대변인

일단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고 교육정책 부처는 교육부로 명칭을 변경한 것은 긍정적이다. 비록 박근혜 당선자의 과학기술 중시의지를 반영한 것이긴 하지만, 교육부가 교육 분야 업무에 집중하게 된 것은 우리 교육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변화로 보인다. 앞으로 교육부는 현행 교육자치제도의 취지를 살려 초·중등교육 관련 업무를 과감하게 시·도교육청에 대폭 이관하는 한편, 자신의 역할을 초·중등 교육에 대한 지원업무로 한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공교육을 위기로 몰아넣은 대학서열체제 등 입시경쟁체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정책적 역량을 집중해 주기를 바란다.

진로 탐색을 위한 중학교 자유학기제 도입은 입시경쟁의 조기격화를 차단하고 학생의 진로적성 탐색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입시경쟁 체제가 현존하는 상황에서 그 취지가 제대로 살려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제로 자유학기제를 도입할 경우 이를 겨냥한 또 다른 사교육시장이 극성을 부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박근혜 당선자의 교육공약 가운데 대표적인 게 ‘교원평가 강화'이기 때문에 업무보고에서도 이에 대한 내용도 있었을 짐작된다. 기본적으로 교원평가를 강화하려는 정부정책이 교육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교사들을 통제하려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경쟁을 시켜야 교사도 발전한다는 논리인데, 교육활동은 개별교사의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학교차원에서 교사집단이 공동으로 협력함으로써 만들어진다. 교육노동이 갖는 특수성을 무시한 교원경쟁시스템은 굉장히 위험하다. 박근혜 정부는 교원평가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부터 다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대차 불법파견 해결, 새 정부 경제민주화 정책의 시금석"

양동규
금속노조 부위원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고용률 70% 달성을 국정 중심에 두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일자리 창출의 한 방법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줄이고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시간에 포함하는 정책이 추진할 것이다. 법정 근로시간에 대한 수정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장시간 노동체계는 단순히 근로시간 법제의 문제는 아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연장근로와 특근 없이는 생활하기가 어려운 저임금이 핵심적인 문제다. 노동시간 단축은 단순히 일자리나누기 차원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저임금 문제를 포함해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임금 문제 해결 없는 노동시간단축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경제민주화 정책도 마찬가지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을 통해 원·하청 불공정 거래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지만 구조적인 해결책이 뒤따라야 한다. 원·하청 불공정거래는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의 문제도 함께 포함돼 있다. 상장기업 수입의 78%가 10대 재벌에 집중돼 있는 이익독점 구조는 어디서 기인하나. 바로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원·하청 노사관계에서 은폐된 재벌들의 불법행위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수위가 먼저 풀어야 할 문제는 ‘불법파견’이라는 현대차의 현행법 위반사태를 해결하는 것이다.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시금석이 될 것이다. 또한 선거 전에 약속한 쌍용자동차 국정조사와 실질적 해결도 지켜져야 한다.

사실 박 당선자와 인수위가 부처별 업무보고 보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노동 3대 현안이다. 현대차 불법파견으로 대변되는 비정규직 문제와 쌍용차 사태에서 나타난 정리해고의 문제, 노조파괴와 거액의 손해배상 문제에 대한 인수위의 입장을 내놓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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