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고용시장도 마찬가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채용을 줄이고, 인력을 감축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일자리 혹한’이 온다는 걱정이 현실이 되는 모양새다. 일자리 양은 물론이거니와 일자리 질도 걱정이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은 ILO의 정의에 따라 분류했을 때 우리나라의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비공식 노동자가 지난 2011년 기준 704만4천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40.2%에 이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노동시장의 주체들은 고용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어떤 해법을 찾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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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과 고용을 망치는 시스템 재검토해야”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처장

상품생산을 하는 기업이 산업자본의 방식으로 이윤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자본의 방식으로 이윤을 축적하는 현상을 ‘기업금융화’라고 한다. 기업자체를 금융자산으로 가치를 평가하고 주식시장·금융시장에서 금융상품으로 거래도 한다. 기업은 생산·고용 등의 가치를 포기하고 주식가치의 상승을 목표로 경영을 하고, 수익만 내고 바로 주식을 팔고 떠나는 주주만이 주인이라 한다. 그런데 주식가치 상승을 위해서는 구조조정을 자주하고, 끝내는 고가로 (재)매각해야 고수익을 낸다. 산업설비를 축소매각하고 숙련된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고 보유 부동산을 매각해 현금보유·유상감자로 자본금을 축소시킨 그런 기업은 상식적으로 망해야 하는데, 주가는 상승한다. 주주자본주의다. 미국과 미국을 추종한 자본주의 국가들이 최근 불황에 고통을 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산업은 축소되고, 실업자와 파산자는 넘쳐나고, 세수는 감소하여 국가는 채무에 휘청거리지만 소수 1% 금융자본만 호황인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한국은 아직도 이런 자본주의가 정당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심지어 자칭 진보라는 일부 세력도 그렇다. 최근 재벌그룹들은 M&A를 통해 성장을 하고 있는데, 30대 재벌그룹(공기업 제외)은 2009년 말부터 2011년 말까지 442개 기업을 계열사로 새로 편입했고 전체 계열사 수는 975개에서 1천150개로 불어났다. 또 부동산 임대·유통업 등 생산과 고용에 투자를 하지 않고 수익을 내는 업종에 치우쳐 있다. 그 결과는 이미 불황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주주자본주의를 해체하고 새로운 경제체제를 고민하고 실현해야 할 때다.

“고용악화, 정부와 민간이 합심해 극복해야” 

이재흥
고용노동부
노동시장정책관

우리나라는 세계적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있으나 총량적 측면에서 고용은 견조한 증가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올해는 세계 경제의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수출과 내수의 동반 둔화 등 대내외 경제여건의 악화가 우려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각각 3.6%와 3.0%로 전망했다.

경제성장 둔화로 인해 취업자 증가폭 역시 둔화하고 고용사정이 악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최근 국책연구기관 등 대부분의 연구기관에서 올해 고용이 둔화할 것으로 예측했다. 취업포털의 채용규모 조사에서도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줄이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적극적인 고용정책을 펼치고 노사를 포함한 민간이 함께한다면 경제 여건이 어렵더라도 고용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 정부는 올해 일자리 예산을 지난해(9조9천억원)보다 1조1천억 증가한 11조원으로 편성했다. 고용악화에 대비해 선제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고 시행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새정부는 임기 내 고용률 70%를 공약했다. 고용사정이 악화한다면 특단의 대책도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들이 불확실성에만 기대 투자를 꺼리지 말고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경제도 활성화하고 고용사정도 나아질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청년취업을 활성화하고 노동시장 미스매칭을 해소하며 고용연장유지와 생계 지원을 확대해 국민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새정부의 출범에 맞춰 민관이 합심한다면 고용사정 악화라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고용의 질과 양, 동시에 해결돼야” 

김미정
민주노총
정책기획실장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하는데, 그 방향성은 좋다. 하지만 그 공약을 지키기 위해 현재 벌어지는 사태들을 보면 어떤가. 미리 비정규직을 무더기로 잘라내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인원을 확 줄여 놓겠다는 ‘꼼수’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고용 수치에 집착을 하기 때문에 나오는 발상들이다.

‘고용의 질’ 문제가 담보되지 않으면 경제활성화의 선순환구조를 만들 수 없다. 정부가 취업률 숫자를 맞추는데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내수경제를 안착시켜서 전반적으로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도 살고, 기업도 살 수 있다. 다시 말해 공공사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를 확대하되, 질에 대한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고 나눌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을 온전히 기업에만 맡기면 문제해결이 안 된다. 당장 10시간에 자동차 100대를 만드는 것을 8시간에 100대를 만들라고 하지 않나. 노동시간 단축이 고용창출로 연계되는 것을 정부가 나서서 법·제도적으로 정착시키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만 높아지는 효과만 나타나게 될 것이다.

“고용률도 낮고, 질도 낮은 이중고 처해” 

안은미
한국노총 정책부장

2012년에는 낮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고용률이 10월까지 60%대로 늘어나는 기현상이 나타났으나, 연말부터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가 미치면서 58.3%로 하락했다. 고용률 하락세는 경기호전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올해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최근의 고용추세를 보면 취업자수 변동이 심한데 여기에는 단기근로·비정규직·영세자영업자 등 생계형 일자리 증가가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가 자영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으며 단적으로 증가한 취업자 중 20만명이 자영업자였다. 즉 절대적인 수치로서 고용률도 낮고, 고용의 질도 낮은 이중고에 처해 있다.

박근혜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고용·복지 분과를 별도로 신설한 이유도 얼어붙은 고용시장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노력일 것이다. 인수위는 매년 57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ILO 기준으로 고용률을 10%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정작 당선자의 행보를 보면 실망스러울 따름이다. CEO들을 만나 ‘기업규제 풀어줄테니 일자리를 만들라’며 구시대적 주문을 하면서, 정작 ‘노동자의 목소리’에는 안중이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한 ‘따뜻한 성장’이란 말인가. 박근혜 당선자는 한국노총이 주장하고 있는 근로시간 단축·고용공시제도·청년고용할당제·정년연장·공공사회서비스 확대 등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길 바란다. 국민들은 위로가 아닌 구체적인 정책이행과 좋은 일자리를 원한다.

“합리적인 고용경직성 해소, 일자리 창출 발판” 

류기정
한국경총
사회정책본부장

지난해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취업자가 44만명 증가하고 실업률도 3% 수준에서 유지되는 등 외견상 양호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올해는 세계경제의 침체 여파가 직접적으로 국내 경제에 영향을 미치면서 경기 침체의 가속화와 더불어 취업자 증가도 30만명 초반대로 하락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새정부가 출범하면서 지난해에 제기된 공약들을 추진하기 위한 액션플랜들이 마련될 것으로 보여 비정규직·청년·고령자 등 취업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과 차별 해소를 위한 고용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고용규제 강화는 전체 비정규 근로자의 94.8%가 종사하는 중소영세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또한 원·하도급 관계 규제가 확대될 경우 기업의 생산활동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또 노동시장 미스매칭과 연공급형 임금체계 등 노동시장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청년 고용할당이나 정년연장 법제화를 추진할 경우 우리 경제의 고용창출능력 약화와 질적 저하가 불가피하다.

저성장 기조 속에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기업가 정신을 제고하고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한편 노동시장의 임금과 고용수준이 경제상황을 반영할 수 있도록 경직성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2003년 독일의 하르츠 개혁, 최근 미국 24개주의 근로권법 도입 등 고용 유연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사례들은 국제경쟁력 평가에서 낙제점을 면치 못하는 우리 노동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들의 위기대응능력을 제고하고 일자리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균형 잡힌 고용노동정책이 수립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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