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선을 좀 일찍 치르면 어떨까. 승리한 쪽의 신년은 온통 축제 분위기겠지만, 패배한 쪽은 좀체 신년 분위기를 낼 수 없다. 물론 대부분의 경기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공정한 경쟁과 아름다운 승리가 있고 패자도 이를 함께 축하하며 경기를 즐기는 것이 올바른 경기문화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로든 그 승패를 패배한 쪽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경우에는 추스르고 통합할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 대선은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 대선이 실시된 지난해 12월19일은 진보진영에게 ‘검은 수요일’로 기억되고 ‘멘붕(멘탈 붕괴)’이 주요 화두가 됐다. 대선을 10월쯤에 치러 패배한 쪽도 결과를 추스르고 받아들일 시간이 주어진다면 신년이 신년다울 수 있을까.

진보진영에게 2013년 신년은 새로운 희망이랄 것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근하신년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없다. 심지어 선거 이후 자살한 노동자들의 수를 세야 하는 상황이다. 음력으로 보면 아직 계사년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계사년 새해는 그야말로 죽음을 헤아리는 계사년(計死年)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마저 든다.

그렇지만 그야말로 ‘쿨’하게 새누리당의 승리를 인정하자. 아니면 적어도 진보진영의 패배를 인정하자. 지역 패권주의로 뭉쳐 새누리당 승리의 주역이 된 경상도를 배척하자거나 50대 이상의 몰표를 문제 삼아 노인들의 무임승차나 노령연금을 폐지하자는 발상을 버리자. 이것은 진보진영을 유아기로 후퇴시키는 몽니일 뿐이다. 진보는 약자의 해방을 통해 전체의 해방을 추구한다. 강자의 배척을 통해 특정 집단만의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정권이 잘못하리라는 환상은 버리자. 진정한 발전과 이를 토대로 해 다음 경기에서 거둘 승리는 상대의 잘못으로 인해 얻는 어부지리가 아니다. 잘한 상대를 이겼을 때 진정한 발전과 승리일 수 있다. 여러 가지 결함과 우려가 많은 정권이지만, 이미 정당한 절차를 통해 출범하는 만큼 잘못하기보다는 잘해야 모두에게 좋다. 패배를 인정할 바에는 승자가 잘하기를 바라야 한다.

진보진영은 새 정권을 끊임없이 압박해 정치를 잘할 수 있도록 하고, 새 정권이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역량과 지지세력을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 트집을 잡아 흠집내기나 비판에만 매진하는 것은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대선에 대한 반성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뤄져야 한다. 주변 조건이나 제3의 조건이 아무리 나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면 그것도 궁극적으로는 행위주체의 역량 부족 탓이다. 자신에게서 오류를 찾고 시정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다음 기회에서 더 나쁜 조건을 맞이하더라도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주도하는 정치’를 말하는 ‘누구의 정치’가 아니다. ‘누구를 위한 정치’를 의미하는 ‘어떤 정치’가 중요하다. 현재의 보수가 과거의 보수나 과거의 진보보다 낫도록 사회적 압력을 행사하는 한편, 미래의 진보는 현재의 보수나 현재의 진보보다 낫도록 노력해야 한다. 상황이 비록 극단적일지라도 극단적으로 사고하지 말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 2013년은 죽음을 헤아리는 해(計死年)가 아니라 일대 사건을 도모하여 만들어 가는 해(計事年)가 되도록 하자.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byungkee@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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