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간곡히 호소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국민대통합 차원에서 노동현안을 해결해야 합니다.”

지난달 25일 민주통합당 의원모임인 ‘진보행동’ 소속 의원들이 국회 정론관에 섰다. 그들은 고 최강서씨와 고 이운남씨의 빈소를 조문하고, 당시 70일째 고공농성 중인 현대자동차 최병승씨의 철탑농성 현장을 방문한 뒤 상경했다. 그러던 중 이호일 대학노조 한국외대지부 위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를 접했다. 이날 기자회견문을 읽는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의 목소리는 떨렸다. “여러분의 절망은 민주통합당의 잘못으로 벌어진 것입니다. 눈 부릅뜨고 살아서, 용서하지 마십시오”하는 대목에서 은 의원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눈물 흘릴 시간도 없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3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은수미(50·사진) 민주통합당 의원을 만났다. 대선 기간에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많은 일정을 소화했던 그는 대선 뒤에도 쉴 틈이 없었다. 같은달 21일 고 최강서씨 소식을 듣고 부산으로 내려가 조문한 것을 시작으로, 민주통합당에 쏟아지는 노동자들의 죽음과 관련한 언론 인터뷰를 도맡았다. 지난달 24일 당 의원총회에서 노동대책위원회 구성을 강하게 요구한 이도 그였다. 결국 민주통합당은 의원총회-당무위원회 연석회의에서 노동대책위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눈물을 흘릴 시간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왜 기자회견 때 울컥했나 했더니 (대선 뒤에) 못 울어서 그랬나 봐요. 울고 싶었는데 울지도 못하고, 하도 기가 막히고….”

은 의원은 노동자들의 잇단 죽음의 원인을 ‘좌절’로 설명했다. 그는 “(새로 들어설 정부의) 기류가 우려스럽다고 느끼고, 그렇게 좌절할 만한 이유가 있다”며 “노동자들에게 ‘새누리당은 이명박 정부 시즌2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년) 새누리당 정권에서 처참한 노조탄압이 이뤄졌습니다. 창조컨설팅 노조파괴 사건이 다른 데서 일어난 게 아닙니다. 쌍용자동차도 원죄는 노무현 정권에 있지만 구체적으로 해고나 진압 같은 사건이 벌어진 것은 2009년 새누리당 정권 때예요. 노조파괴도, 노조 조직률의 급격한 저하도, 복수노조를 악용한 것도, 쌍용차의 부당한 정리해고 문제도 다 새누리당 정권에서 이뤄졌던 노조탄압입니다. 여기에 대해 (박근혜 당선자가) 우리는 이전 정부와 다르다, 그 증거로 이러저러한 것이 있다고 입증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냥 (같은 기조대로) 가는 걸로 생각할 겁니다.”

“쌍용차 국정조사, 당선자 의지 보이는 시그널”

은 의원은 새누리당에 ‘제스처’와 ‘시그널’을 주문했다. 제스처는 박근혜 당선자 혹은 주변의 ‘말’이다.

“새 정권이 출범하기 전에 노동정책의 방향을 확실하게 선회해야 노동자들의 우려를 차단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 당선자가 이명박 정부 노동정책에 대해 언급해야 합니다. ‘MB정부 노동정책에서 이건 잘못됐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정책을 쓴다’고 말해야죠. 별거 아닙니다. 그냥 말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걸 안 하거든요.”

그는 새누리당이 취할 수 있는 '시그널'로는 쌍용차 사태 국정조사를 꼽았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선 총괄선대본부장은 대선 기간에 종교계와 만나 “대선 뒤 첫 국회에서 쌍용차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은 의원은 “쌍용차 국정조사가 굉장히 중요한 시그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말은 (쌍용차 국정조사를) 한다는 건데 진전이 안 된다. 이러면 질질 끌기 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며 “안 한다고 하면 폭격을 맞을 것 같으니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불식시켜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은 의원은 쌍용차 국정조사와 함께 현대차 사내하청과 노조파괴 진상조사도 박근혜 당선자가 이명박 정부와 차별성을 보일 주요 요소로 꼽았다.

“괜한 사내하도급법 제정 같은 얘기 말고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 해결하겠다, 위법한 노동력 활용은 안 된다고 분명하게 밝혔으면 합니다. 거기에 창조게이트에서 나타난 노조파괴 조사가 현재 지지부진한데, 속도를 내겠다고 하면 이명박 정부와 명백히 차별화되는 겁니다. 박 당선자가 최근 대기업에 정리해고를 자제하라고 했는데, 그건 기존의 것은 두고 신규출자는 금지하겠다는 말처럼 의미가 없어요. 박 당선자가 노동권 문제에 대해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는데요. 참 우려스럽니다.”

“노동대책위, 현장소통으로 시대정신 유지할 것”

은 의원의 비판대상에는 민주통합당도 포함됐다. “민주통합당을 용서하지 말고, 살아서 지켜보라”고 말하던 모습 그대로다. 그는 “총선과 대선 참패의 죄인인 야당이 죄인이라는 얘기만 해서는 소용이 없다”며 “죄인, 너희들이 이제부터 뭐 할래 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대선에서 표출됐던 시대정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대선에서 대두된) 시대정신은 노동의 권리, 일자리의 안정성입니다. 박근혜 당선자도 본인 입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비정규직 차별해소, 사내하도급법 제정을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시대정신을 앞으로 1년만 유지할 수 있다면, 유지하는 데 민주통합당이 기여할 수 있다면 야권이 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커질 것입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현장 다 죽었다', '민주통합당도 그런 활동을 못한다'고 판단하면 (노동은) 일체 무시되는 거예요.”

은 의원이 의원총회에서 노동대책위 구성을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민주통합당은 지난달 24일 노동대책위 구성을 의결했다. 같은달 31일 의원총회에서 국회 환노위 야당 간사인 홍영표 의원을 노동대책위 위원장으로, 은 의원을 간사로 인선했다. 노동대책위에는 환노위 소속 민주통합당 의원(6명) 외에도 8명의 의원이 추가로 합류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노동대책위 활동에 대한 밑그림도 소개했다. 단순하게 농성현장을 찾아가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과 소통하면서 노동의제를 발굴하겠다는 복안이다. 은 의원은 “대선 과정에서 프랜차이즈 점주 3명을 초청해 의견을 들었던 것처럼 현장과의 거리를 좁히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해체 수준의 재창당 필요”

“농성현장은 찾아가야죠. 하지만 그런 것을 공유하는 것 이상이 돼야 합니다. 사실 노동자의 90%는 자신을 지켜 줄 노조도 없고, 농성도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세대에 걸쳐 있습니다. 그들의 의견을 직접 듣고, 같이 할 수 있는 정책적인·법제적인 내용이 있을 겁니다. 그런 것을 리스트업하고 우선 해결하는 거죠. 이념과는 무관한 활동입니다. 관계를 쌓고, 신뢰를 쌓고, 정책을 쌓는 거예요. 6개월에서 1년을 그런 방식으로 하면, 그래서 상당수 의원들이 의원실 문을 확 낮춘다면, 변화될 수 있지 않겠어요?”

은 의원은 민주통합당에 '해체 수준의 재창당'을 주문했다.

“시대정신이 노동권의 확립을 요구했다면 우리가 할 일은 터진 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않게 물길을 만드는 겁니다. 각 부문이 고민해야 합니다. 민주통합당은 노동이나 민생에서 어떻게 물길을 만들어 낼 건지 더 고민해야 합니다. 또 수권능력 있는 리더십을 재구성해야 합니다. 그게 해체 수준이 되더라도…. 5년 짧습니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5년 후에도 어려울 겁니다. ‘멘붕’이요? 정치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저는 요즘 정신 차려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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