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박근혜와 문재인을 보라. 2012년 대권시리즈는 일찌감치 이러한 양자대결로 전개됐다. 5년 전처럼, 10년 전에도, 15년 전과 20년 전에도 그랬다. 노태우와 3김으로 전개됐던 87년 대선을 제외하고는 56년 대선 다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랬다. 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민주쟁취에 따른 직선제로 치러졌던 87년 대선이 지역 연고별로 후보가 출마해서 양자대결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특이했다. 하지만 보수후보들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이때를 제외하고는 이념적으로 분류하자면 보수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양자대결로 전개됐다. 물론 그들 사이 대립은 자못 치열했다. 유신과 군사정권으로 민주적 기본질서조차도 짓밟았던 시대에서 그 대립은 선명했다. 하나는 나라의 안정과 안보를 내세우며 대한민국의 수호를 내세웠다. 다른 하나는 집권세력을 반민주라고 비난하고 독재타도 민주쟁취를 외치며 대한민국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의 수호를 내세우는 것으로 서로 대립했다. 그리고 다시 2012년 대선은 여전히 그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니 진보당의 조봉암이 유력 대선후보로 이승만과 대결했던 56년 대선 이후 지난 56년 동안 이 나라에서 정치운동은 같은 정치구호 아래서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냐, 대한민국의 질서냐. 도무지 뭐가 다른 것인지 모르겠지만 박근혜와 문재인을 보라. 그들은 분명히 그렇게 대립하고 있다.

2. 문재인과 박근혜, 그들은 분명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이냐, 대한민국의 질서냐로 지난 몇 십 년 동안의 대립 과정에서 획득한 무기가 있다. 공포가 그들의 무기다. 그것으로 대한민국의 대권 쟁탈전은 그들의 양자대결로 전개될 수 있었다. 박근혜도 문재인도 공포가 무기다. 대북공포증·독재공포증이 그들에게 투표하게 한다. 결국은 예상했던 대로 후보를 사퇴한 이정희는 오로지 박근혜 낙선을 위해 대통령후보에 출마하고 정권교체를 위해 사퇴한다고 했으므로 문재인의 공포 무기를 함께 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공포가 없다. 또 다른 대선후보, 노동자후보라는 그들, 김순자과 김소연에게는 공포라는 무기가 없다. 인민이 겁을 집어먹고서 감히 그들을 찍겠다고 투표소로 몰고 갈 공포가 없다. 대북공포증, 좌경공포증. 전쟁의 공포이고 안정파괴의 공포이며 현재의 재산과 삶까지 송두리째 잃어버릴 수 있다는 공포를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자신의 무기로 하고 있다. 독재공포증. 유신과 전두환 군사정권을 거치며 확보한 민주와 자유를 송두리째 잃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를 문재인과 민주의 당은 자신의 무기로 하고 있다. 경제의 자유, 정치의 자유를 각기 자신의 무기로 하는 공포를 박근혜와 문재인은 가지고 있다. 한국현대사를 관통해온 공포가 그들의 무기다. 인민이 전쟁과 독재의 시대를 살아 내면서 집단적인 경험으로 체득한 공포, 생명과 재산과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는 가장 큰 공포가 그들의 무기다. 노동자후보들이 내세우고 있는 비정규직·정리해고, 그리고 노동시간제·안식년제 등은 지금 노동자의 삶을 위협하는 자본의 공포를 걷어낼 수 있는 무기일 뿐 공포 자체는 아니다. 그러니 지금 대한민국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내일이 아니라 어제냐 그제냐 투표를 하라 협박하고 인민을 자신에게 기표하도록 투표장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문재인과 박근혜를 보라. 공포가 무기다.

3. 공포는 야만의 무기다. 야만의 시대에는 공포가 무기였다.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해서 권력을 차지했다. 인민에게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겠다면서 권력자가 됐다. 인민에게 자유를 지켜 주겠다고 권력자가 됐다.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적으로부터 그것을 지켜 주겠다고 해서 왕이 됐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인민의 생명과 재산,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된 대한민국 국민의 기본권이다. 근대국가가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이로써 대한민국이 근대국가라고 확인되는 것이다. 국가는 인민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했으니(헌법 제10조 후문) 대한민국의 권력이 당연히 수호해야 한다고 선언된 기본권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라면 누구나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중략)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중략) 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취임 선서를 한다(헌법 제69조).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대한민국의 기본질서를 수호하고 대한민국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은 당연한 권력의 일이라고 정하고 있다. 그러니 그에 대한 위협이 인민에게 공포가 돼서는 안 된다. 그에 대한 공포로 권력이 세워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지금까지 그것이 공포였고 지금도 그렇다. 이것은 뭘까. 당연한 권력의 일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독재의 시대를 거치면서 권력이 오히려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짓밟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 공포로부터 보호해 줘야 할 권력이 오히려 공포였다. 권력이 공포인 야만의 시대를 거치면서 한국현대사는 공포가 무기가 됐다. 그리고 민주화운동으로 민주를 쟁취했다는데도 여전히 공포가 대선후보의 무기가 되고 있다. 권력이 공포인 야만의 시대에서 그 공포로부터 해방을 외치는 것이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기 위한 전진의 구호다. 하지만 야만의 시대를 벗어났다는 민주의 시대에서도 여전히 그 공포를 외치는 것은 그것은 야만의 시대로의 퇴보를 말해 주는 구호이거나 아니면 더 이상 전진할 의지가 없는 세력이 외쳐대는 낡은 구호다. 박근혜와 문재인. 그들은 대한민국이냐, 대한민국의 질서냐로 대립하고 있다. 이미 민주가 쟁취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외치는 구호라면 모두 낡은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아직도 민주가 쟁취된 민주의 시대가 오지 않은 것이라면 대한민국에서 민주적 기본질서를 세워 내겠다고 외치는 민주의 구호는 시대의 구호다. 무엇일까. 지난 수 십 년간 민주화운동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는 아직도 민주쟁취의 그날은 오지 않은 것일까. 그러니 그날이 오면 진보로 노동으로 가자면서 표를 달라던 그들의 약속은 아직도 이행시기가 도래하지 않는 것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지겹도록 외쳐 온 독재타도 민주쟁취를 마감하기 위해서 이번 대선일에 투표로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토록 외쳤던 민주쟁취가 고작 새누리당의 집권으로 무너지는 것이라면 이 나라에서 민주의 당, 민주의 세력이 말해 온 민주주의는 너무도 보잘 것 없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언제든지 정권교체로 사라져 버리는 것. 달리 말하면 고작 민주의 당으로 정권교체로 되살아나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과연 그것을 쟁취하고자 이 나라 인민은 민주화의 거리를 달리고 민주의 광장에 몰려나와 민주쟁취를 노래했던 것인지 그들은 답해 줘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은 그들의 권력이 말하게 되고 그들의 당이 말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행동으로 명백히 말하게 될 것이다. 이미 그들은 행동으로 말했던 것이지만 그들의 후보에게 투표하는 인민들에게는 또 다시 말하게 될 것이다.

4. 공포가 그들의 무기인 세상은 황무지다. 노동자의 권리와 세상을 세우려는 노동정치의 황무지다. 인민의 생명과 재산, 자유가 박탈당한다는 공포로부터 지켜 주겠다는 권력에게 투표하도록 한다. 노동정치가 새롭게 세워 내야 할 노동하는 인민의 생존과 권리, 자유는 당장 급박한 현재의 공포로부터 먼 구호이고, 공허하게 들린다. 그런데 그 황무지는 근대국가의 질서가 아니다. 근대국가인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질서가 아니다. 공포는 근대국가에 대한 위협이고 근대국가 헌법질서에 대한 위협이다. 정상적인 근대의 국가라면 그 공포의 구호는 거짓의 구호이다. 정상적인 근대국가의 질서라면 그 공포의 구호는 너무도 당연해서 하나마나한 의미 없는 구호다. 그런데 오늘날 18대 대한민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포가 무기다. 이 나라 인민은 국민으로서 투표해야 한다. 근대국가냐, 근대국가의 기본질서냐. 그 공포가 거짓이고 당연한 것이지만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거기서 노동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지금이 가장 명확해지는 시간이다. 숨길 래야 숨길 수 없는 시간, 숨을 래야 숨을 수 없는 시간이다. 결정적 순간, 대권을 앞두고서 동지와 적을 분명히 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순간이다. 지금 이대로 보면 된다. 그가 누구인지 보고서 이제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누구인지 분명해지는 시간이다. 진보니 진보운동이니 진보정치니 하는 것들이 내게서 지금까지 무엇이었는지. 노동이니 노동운동이니 노동정치니 하는 것들이 우리에게서 지금 무엇인지. 거짓 없이 노골적으로 보인다.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이, 더 이상 숨을 것도 없이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가장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다. 바로 표로 확인되는 우리의 정체를 분명히 하고서 이제는 노동정치가 공포가 무기인 시대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나아가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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