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오랫동안 진보정치에 매진해 온 친구들과 만났다. 자연스레 누굴 찍나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 친구는 찍고 싶은 후보가 없어 투표 않겠단다. 투표 참여의 열의가 잘 나지 않는다는 데에는 여럿이 동의했다. 하지만 기권이 가장 혐오하는 후보의 집권에 기여하는 행위이기에 야당 후보를 찍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누구를 찍든 투표는 꼭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일종의 “시민됨의 책임감” 같은 논리였다. 만약 기권을 한다면 그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고, 선거 이후에도 정치적 논의 과정에 참여할 심리상태가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지지하고픈 후보가 있는 유권자들이 부럽다고 말도 나왔는데, 적잖은 진보파들이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분명 민주주의는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전쟁이나 세계적 경제위기 등 외부로부터의 위기에 취약하기도 하고, 좋은 정치가와 정당 없이는 잘 작동이 안 되는 문제도 있다. 자유롭기는 하나 그만큼 이견을 가진 집단들 사이의 감정적 상처는 더 크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 점에서 민주주의는 인간이 가진 한계와 가장 닮아 있는 체제가 아닌가 싶다. 흔들리지 않는 삶, 과오 없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은 민주주의를 좋아하기 어렵다. 민주주의는 또한 큰 변화를 잘 허용하지 않는다. 20세기 초 혁명을 지향했던 유럽 마르크스주의자들을 괴롭혔던 문제도 거기에 있었다. 대중정당을 만들고 선거에 참여하면서 그들이 발견한 것은, 그럴수록 자신들이 바라는 길에서 멀어지는 현실이었다. “민주주의는 혁명의 무덤”이라고 일갈했던 그들이야말로, 역설적이게도 민주주의의 특징을 가장 예민하게 인식했던 사람들이었다. 민주정치가 허용하는 최대치는 사회민주주의라는 테제 역시 그래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비권력성과 해방적 사고를 특징으로 하는 문화와 예술 등의 영역에서 혁명적 발상은 권유할 만하다. 자신과 관계된 문제에서도 스스로를 근본적으로 혁신해 보고자 하는 시도는 얼마든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국가와 권력의 문제, 폭력과 강제력의 문제를 피할 수 없는 정치의 세계에서 혁명적 접근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작고 느린 변화라도 그 가치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최악을 피해 차악이라도 기꺼이 선택해야 하는 것이 민주정치다. 어쩌면 민주주의를 수용하는 순간 조급성을 버리고 점진적인 변화와 긴 미래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언젠가 누군가 필자를 모임에 초대하면서 “좌파들이 참여한다”며 이념적 동질성을 내비친 적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이질감이 느껴졌다. 왜 그런 느낌을 가졌는지를 되돌아보고, 나의 이념적 정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서 ‘중도 좌파’로 불릴 때가 심리적으로 가장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느린 변화에 답답함은 있지만, 민주정치 안에서 나날이 좋아지기를 바란다. 좋은 목표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좋은 것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갈등 속에서 지리한 공방을 하겠지만, 그래도 오래가는 변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 여긴다.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그나마 조금 더 나은 것을 얻는 것, 혹은 그나마 덜 나쁜 결과를 얻는 것에도 한동안은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만과 냉소로 일관해 현실로부터 멀어지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좋은 진보정당을 기대한다. 인간미 없는 좌파를 싫어하고 민주적 가치를 농단하는 비이성적 진보를 인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민주적 좌파의 길 나아가 인간적 진보의 길이 끝났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에서 가장 나쁜 일은 열정의 부족이 아니라 어리석음 때문일 때가 많다. 조급한 기대 때문에 성급하게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야말로 실패 없는 삶을 꿈꾸는 어리석은 생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가 끝도 아니고 모든 것도 아니다. 오늘의 어떤 선택이든 그것이 내일의 가능성을 위한 적극적 행위로 이어질 수 있는 작은 여지라도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심리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더 단단한 내면을 가질 수 있는 기회는, 늘 힘든 결정의 순간을 동반한다. 괴롭지만 그것이 인간의 현실이다. 그 순간을 회피하지 말고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기회로 삼아 내일에는 더 빛나는 진보정치 활동가들이 되길, 그들의 친구로서 기대하고 응원하고 싶다. 상투적인 말이 가끔은 진실 이상의 느낌을 줄 때가 있는데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온다”는 말도 그 가운데 하나 같다.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parsh03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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