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구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좌파노동자회
상임대표)

민주노총은 그동안 대의원에 의한 간접선거로 위원장을 선출했다. 1999년 대의원대회에서 직선제 규약안이 상정돼 60% 넘는 찬성이 있었으나 3분의 2 찬성에 미치지 못해 미뤄졌다. 그러다 2007년 4월 직선제 규약개정안이 가결됐고, 3년 유예를 거쳐 2010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2009년 9월 또다시 직선제 실시시기를 3년 유예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규약상 직선제를 실시해야 했다. 규약과 규정에 따라 선거일인 12월11일 63일 이전인 10월9일 선거공고를 해야 했다. 각급단위 선관위 구성은 3개월 전인 9월11일까지 완료해야 했다. 하지만 민주노총 6기 집행부는 9월 말 임시대의원대회를 소집해 임원직선제를 3년 유예하는 내용의 규약개정을 시도했으나 정족수 미달로 유회됐고, 10월 말 다시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직선제를 유예했다. 위원장과 임원 몇 명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민주노총은 직무대행체제로 전환했다.

그런데 10월 말 대의원대회는 규약과 규정을 위반한 불법과 부정으로 진행됐다. 진상조사위원회를 거친 뒤 무효화됐고, 공고됐던 간선제 선거 역시 취소됐다. 이달 11일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위한 중앙위원회가 열렸다. 문제는 다시 간선제 규약을 통과시켜 간선으로 위원장을 뽑는가, 아니면 현재 규약과 규정대로 조합원 직접선거로 위원장을 뽑는가다. 이를 명시적으로 결정하지 않았다.

비대위가 위원장을 어떻게 선출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명백한 사실이 있다. 지금도 직선으로 위원장을 뽑아야 할 규약과 규정을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지금 18대 대통령 선거를 진행하다가 선거관리의 어려움이나 어느 후보의 유·불리를 따져 국회에서 간선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법을 개정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민주노총은 지난 몇 달 동안 규약과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우리는 지난 시기 정권의 노동탄압을 말해 왔다. 정권의 정점에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은 최소한 1천만명 이상의 지지를 얻어 당선된다. 1천700만 임금노동자를 비롯해 2천500만 비정규·불안정 노동자를 상징적으로 대표하고, 80만 조합원의 위원장을 고작 대의원 500여명의 지지로 뽑아서야 되겠는가.

그러나 11일 열린 3차 중앙위원회는 직선제로 위원장을 뽑는 비상대책위를 구성하지 않았다. 비상대책위는 지난 10월30일 대의원대회에 대한 진상조사를 마무리해야 한다. 그리고 규약·규정에 따라 즉각 직선제 실시를 위한 일정을 밝히고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대위 역시 규약 위반과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빠지지 말고 투표하자고 독려하는 민주노총이 자기 위원장을 직접 뽑는 직선제를 파기하려 해서야 되겠는가. 이번에 구성된 비상대책위가 다시 간선제로의 규약개정을 시도한다면 민주노총은 파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직선제를 통해 위원장을 선출하는 과정이야말로 무기력에 빠진 민주노총을 되살리는 길이고,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하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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