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보
한국노동사회
연구소 이사장

지난 6일 저녁 성공회대에서 조그만 연극제가 열렸다. 주제는 ‘1970s, 잊혀진 것들에 관한 살아 있는 이야기’. 70민노회·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젠더센터·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전국여성노조·청년유니온·한국여성노동자회가 공동 주최했다. 영하 12도의 매서운 추위인데도 행사장은 거의 자리가 찼다. 70민노회 회원을 포함해 젊은 학생들과 여성노조원·청년유니온 멤버들에 시그네틱스와 풍산금속 해고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행사의 의미에 대한 설명에 이어 상황극 ‘1970s, 여공’이 공연됐다. 극은 70년대 여공 세 명의 내레이션과 극단 ‘꾼’·노래패 ‘아름다운청년’이 어울렸다. 그리고 성공회대 교수의 사회로 70년대 여공들과 청년유니온 대표의 방담과 해고 노동자들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여공들의 내레이션은 이랬다.

저 멀리 남원에서 억압과 가난에 서울 판자촌으로 밀려온 열세 살 여자아이는 돈을 벌기 위해 청계천 평화시장에 들어갔다. 아침 일찍부터 밤 11시20분까지 온종일 허리 한 번 펼 수가 없었다. 수없이 바늘에 찔리며 생리대도 제대로 차지 못한 채 화장실도 제때 못 가고 받은 첫 월급은 700원.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다가 과로와 영양실조로 쓰러져 가며 7번 시다 ‘공순이’는 3년 만에 월급 7천원의 미싱사 꿈을 이뤘지만 ‘공순이’는 아직도 살아 있는 기계였다. 이렇게 지쳐 있을 때 노조를 알게 되고 못난이 ‘공순이’는 당당한 ‘노동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유신독재정권은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빼앗아 버렸다. 걸핏하면 노조간부들을 잡아갔다. 조합원들은 단식·농성·준법운동을 벌여 잡혀간 간부들을 되찾아오곤 했다. 그 와중에 회사는 한계 이하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 외국으로 빼돌렸고 졸지에 노동자들은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 견디다 못한 노동자들은 “배고파 못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고 아우성치며 야당 당사로 몰려갔으나 잔혹한 경찰들에게 개처럼 끌려나와 감옥과 유치장에 처박히고 고향으로 쫓겨갔다. 진압 과정에서 한 노동자는 경찰에 맞아 4층에서 떨어져 죽었다. 독재자 박정희의 종신 집권욕과 자본의 탐욕을 채우는 과정에서 민주노조는 성가신 존재였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민주노조를 없애려 했다. 남성노동자들을 동원해 여성 집행부를 몰아냈다. 연약한 여성 노동자들이 거세게 저항하자 중앙정보부 지휘하에 회사와 상급노조까지 나섰다. 조합원들을 쫓아다니며 똥물을 온몸에 바르고 먹였다. 그리고는 124명을 해고하고 그것도 모자라 해고자 명단을 전국의 기관과 사업장에 돌려 취업을 막아 버렸다. 블랙리스트의 악몽은 평생 삶의 조건을 말라죽이는 고엽제였다. 이 같은 유신독재정권의 만행은 민주시민의 항쟁과 박정희의 피살로 귀결됐지만 신군부는 유신의 부활을 노려 광주민중항쟁을 총칼로 찍어 누르고 남아 있는 민주노조들을 모두 파괴해 버렸다.

머리에 흰서리가 가득하고 바쁜 일손에 손자·손녀 돌보기에 힘들어하는 할머니·할아버지들. 극이 진행되는 동안 흐느낌과 깊은 탄식이 끊이지 않았다. 사이사이 노래와 박수·환호로 한을 달랬다. 40년 가까이 켜켜이 쌓인 울분과 회한이 민주노조운동을 향한 열정과 뒤엉켜 또 다른 ‘유신의 추억’을 연출하는 듯했다. 참가자들은 마치 형제·자매들처럼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위로하고 격려하며 뒤풀이 장소로 향했다.

민주주의 정권교체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할 지금, 특히 20·30대 젊은이들의 투표 참여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라 있는 이때, 이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시절의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원래 이 연극은 ‘유신잔재 청산과 역사정의를 위한 민주행동’의 한 프로그램으로 지난 10월 대한문 앞에서 공연했던 것을 되풀이한 것이었다. 70년대 여공들은 오늘날에도 참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그러나 힘없고 가난한 노동대중이다. 이들은 유신독재체제의 가장 참담한 희생자이며 저들의 반인간적 반역사적 만행에 누구보다 심한 고통을 겪어 왔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1%의 부를 위해 99%를 찍어 누르려는 세력들, 유신독재의 상속자로서 지역패권주의와 부의 독점 그리고 수구보수언론의 엄호 아래 지배권력을 형성하고 있는 자들이 국민의 눈귀를 가려 역사를 뒤로 돌리려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늙은 여공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삶에 바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현재의 엄중한 상황타개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았다. 그것은 오랜 가난과 고통에 지친 나머지 흔들리기 쉬운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스스로 가다듬고 젊은이들에게 역사발전의 대의를 조금이라도 알리고 싶은 열정의 산물이었다. 이들은 지난 40여년처럼 서로가 의지하는 버팀목이 돼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향해 70년대의 노래 ‘흔들리지 않게’를 소리 높여 외칠 것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leewb45@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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