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재
한국관광공사
노조 위원장

기획재정부가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정책을 위해 불철주야 충성을 다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는 공기업의 비효율성을 바로잡고, 비대한 조직의 군살을 빼 다이어트를 시키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런데 기획재정부는 이를 ‘공기업 민영화’로 곡해한 것 같다. 공공성을 훼손하는 한이 있더라도 재벌에게 넘길 수 있는 것은 다 넘기자는 심산이다. 이를 위해 왼쪽 팔에는 ‘공기업 민영화’라는 완장을 차고, 오른쪽 팔에는 ‘공기업 경영평가’라는 몽둥이를 들고 설쳐 대고 있다. 희한하게도 적지 않은 국민들은 기재부가 왼쪽에 둘러맨 ‘공기업 민영화’완장을 ‘재벌 특혜’라고 해석하고 있다.

맨 처음 기재부는 홈런을 노렸던 것 같다. 인천공항 민간매각·철도 황금노선 운영권 민간위탁은 기재부에게 만루홈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집권 초 공기업 선진화에 박수를 보내던 국민들이 이제는 야유를 보내고 있다. 그러자 작전을 바꿔 '국민들이 잘 모르게' 기습번트를 시도하고 있다. 인천공항 급유시설 운영권 매각이 첫 번째 대상이었다. 재빠르게 기습번트를 시도해 정치권의 저항을 수월하게 돌파했다.

이후 "밀어붙이면 된다"는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 다음 대상으로 지목한 것은 가스산업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가스사업법 시행령이 개정되면 가스수급이 불안해져 소매 도시가스 요금인상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잘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노조가 반발해도 막무가내다.

의료부문에서도 영리병원의 길을 터 줬다. 현재 국내 모든 병원은 병원에서 번 수익을 병원의 재투자에만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영리병원은 병원에서 번 돈을 주식과 부동산 등에 투자할 수 있게 해 준다. 병원 ‘주식회사’가 환자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 시킬 것이라는 의료업계의 우려가 높다.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면세점도 조만간 민간에 넘길 태세다. 관광공사의 핵심 기능은 외국에 한국을 홍보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관광공사는 인천공항 면세점 국산품 판매를 통해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있다. 면세점 수익도 관광진흥 부문에 100% 재투자해 선순환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관광공사가 면세점을 운영해야 할 명분과 이유는 차고 넘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인천공항 면세점 민영화 저지를 위해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채택했다. 여야 의원들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민영화 정책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정부는 면세점 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운영하는 일산·분당 스포츠센터도 매각이 추진 중이다. 스포츠센터는 지역주민을 위한 체육시설로 민간스포츠센터에 비해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 현재 월 1만여명의 주민들이 체육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스포츠센터가 민간에 매각되면 다음 수순은 뻔하다. 관리비가 막대하게 들어가는 수영장 등은 폐쇄되고, 센터 안에 카페가 들어서면서 스포츠 시설은 규모가 점차 축소될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보조해 가면서까지 스포츠센터를 공립으로 운영하고 있다. 운영 사업자의 수익보다 국민의 건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공공부문 곳곳에서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공기업 매각과 민간위탁이 진행되고 있다.

이른바 '완장'이 득세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암울했던 시대는 완장 찬 사람들의 전성기였다. 일제 말 동족을 괴롭힌 한국인 순사와 군사정권 시절 국민을 사찰하고 억압했던 사람들이 둘렀던 것이 바로 완장이다. 완장은 정치권력의 폭력과 보통 사람들의 암울한 삶을 대비해 보여 주는 상징물이었다.

MB라는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음에도 기재부는 계속 완장을 차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새로 떠오를 해가 어떤 모양일지 가늠조차 안 되고 있다. 그나마 이명박 정부 동안 재벌 곳간에 쌀가마니를 가득 채워 놓은 게 보루가 되고 있다. 정권은 바뀌어도 재벌은 안 바뀐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요즘 기재부는 완장을 유지하기 위해 최후의 보루인 재벌을 위해 봉사하는 모피아가 되기로 작심한 것 같다. 이제는 국민을 위해 무거운 완장을 내려놓아 달라고 기재부에 간곡히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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