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스스럼없이 “형”이라고 부르고, 서울 대한문 앞 쌍용차 농성장이나 노동자 집회 현장에서 오페라를 부르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성악가, 테너 임정현(사진·48)을 볼 때마다 떠나지 않던 궁금증 하나가 있었다. 그래서 지난 16일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포스오페라 사무실을 찾아 물었다. “혹시 운동권이세요?”

사실 임정현은 노동운동, 특히 노동문화예술계에서는 유명 인사나 다름없다. 20대 시절에는 주로 부산·경남 쪽 공단에서 노동조합의 문예활동을 이끌었고, 군 제대 후에는 민중문화운동연합(민문연) 산하 대학생 연합 노래모임인 ‘새벽’에서 활동했다.

30대 초반 훌쩍 유학길에 올랐던 그는 8년 만인 2004년 귀국해 ‘클래식계’에서도 실력파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부턴 ‘이소선어머니 합창단’ 지휘를 맡아 합창단을 이끌고 있다.

현재 오페라 공연·음반 기획을 하는 ‘포스오페라(Progressive Opera Studio)’ 기획사 대표이기도 한 임정현의 지향점은 기획사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듯 예나 지금이나 ‘뚜렷하다.’

임정현의 음악적 재능이 외가 쪽에서 물려받은 것이라면 그의 ‘친노동적’ 성향은 친가 쪽에서 물려받았다. 엄혹하던 70년대 부산에서 목회활동을 하며 운동권들의 ‘대부’ 역할을 했던 아버지는 임정현의 세상을 보는 눈과 귀를 틔어준 장본인이다.

클래식을 좋아했지만 가수 김민기 노래도 줄줄 꿰고 있던 임정현의 고민은 한 가지였다. ‘클래식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서울예고를 거쳐 83년 서울대 성악과에 입학한 후 고민은 더 깊어졌다.

“성악으로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만 해도 내 목소리는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에 가야지만 쓰일 수 있었으니까요. 내 목소리가 세상과 별개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힘들었죠. 실제 운동권 사이에서도 ‘벨칸토 창법은 부르조아 문화’라고 여기는 분위기도 있었고요.”

성악이 좋았지만 성악을 할 순 없었던 그는 대학생활 내내 전공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다른 길을 찾던 임정현은 노동자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노래패를 조직하는 일을 시작했다. 84년에는 김민기·김창남·김재섭 등과 함께 음반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녹음 작업에 참가했고, 군 제대 후 89년에는 노래운동의 본부 격인 ‘새벽’에 들어가 울산 현대중공업노조·거제 대우조선노조·서울지하철 노조의 노래패들을 조직하고 이끌다시피 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임정현의 고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클래식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내가 잘 할 수 있는 성악도 노동생산 기반에서 만들어진 예술이라고 생각하니 성악 자체를 잘하는 것도 앞으로 다가올 노동자 세상에서 내가 복무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죠.”

97년 결혼 후 4개월 만에 유학길에 오르며 임정현은 “소리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하고 돌아와 인정을 받자”고 다짐했다. 폴란드·독일·이탈리아의 실력자들을 찾아다니며 꼬박 8년을 공부하고 돌아 온 그는 다짐대로 클래식계에서 인정받는 성악가로 성장했다.

그런 그가 계속해서 투쟁 현장을 찾고 노동자들을 모아 합창단을 만드는 등 치열하게 사는 이유도 유학을 떠나며 다짐했던 ‘음악으로 노동자 세상에서 복무하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포스오페라’를 세워 다양한 방식으로 오페라의 대중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는 그가 노동운동을 하면서 종종 부딪쳤던 고민이 반영돼 있다.

“사람들이 ‘노동자’라는 틀에만 들어가면 왜 그렇게 딱딱해지고 음악에 대한 상상력이 없어지는지 모르겠어요. 노동자들이 음악을 좀 더 개방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세상이 좀 더 빨리 변할 것 같은데 말이죠.”

임정현은 최근에는 신동엽 시인의 대표 서사시인 ‘금강’을 ‘칸타타’와 접목시킨 ‘칸타타 금강(11월30일~12월1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금강’은 오페라와 창극을 접목시킨 음악극으로 94년 처음 만들어져 2004년에는 가극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임정현은 칸타타 금강을 통해 “오로지 음악만으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금강은 ‘새벽’활동을 함께 했던 이현관이 새벽 활동 막바지에 작곡한 거예요. 앞서 두 번의 금강 공연에서는 음악이 중심에 서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어요. 이번 ‘칸타타 금강’을 통해서는 이현관의 음악세계를 오롯이 보여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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