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통장을 들고는 한숨을 내쉬는 중년 남성. 그의 옆 공장그림은 그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임을 보여준다. 말풍선에는 "한 달 급여가 최저생계비라니… 역시 난 너무 가난해"라고 쓰였다. 공장 노동자는 곧 저임금 노동자라는 의미다.

#2. 이번에는 벽돌을 가득 실은 지게를 메고 힘겹게 서 있는 남성이 나온다. 그 역시 "중학교밖에 못 나왔더니… 이런 일밖에 못 하네"라며 한숨을 짓고 있었다. 학력 수준이 곧 직업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3. 반면 명문대 법대를 졸업한 김아무개씨는 변호사가 되고 교사와 의사와 같은 전문직종은 사회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리면서 존경받는 집단으로 분류된다.

2012년 현재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내용이다.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학력과 직업에 따른 귀천이 있음을 은근히 암시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편향된 선입관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교과서에서 소개되는 직업, 그 중에서도 좋은 이미지로 표현된 직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최근 고등학교 7개 과목의 교과서 16종(4천574쪽 분량)을 분석했다. 이 중 기술·기능인력을 천시하고 학력주의를 조장하는 문구를 선별해 교육과학기술부에 개선을 요청했다.

◇교과서 기술 직업, 전체 10% 불과=올해 기준 한국직업사전에 등록된 직업은 1만1천655개다. 직능원 분석 결과 16종의 교과서에 기술된 직업명은 1천140개로 전체의 10.2%에 불과했다.

학생들이 알고 있는 직업은 전문직과 사무직인 경우가 많다. 건설 관련직만 해도 직업이 626개에 달하고 장치·기계조작 등 조립·기능종사자 직업도 5천600여개가 넘지만 벽돌 운반자나 공장 노동자라는 이미지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그만큼 정보가 적다는 의미다.

교과서에 수록된 직업에 따라 학생 선호가 결정된다는 분석도 있다. 16종의 교과서에서 50번이 넘게 거론된 직업은 대통령과 공무원·의사·교사 등 네 개다. 41~50번 거론된 직업은 운동선수·군인·농부(농민)·변호사·경찰 등 5개다.

최근 직능원이 별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중·고교생의 희망직업 1위와 4위는 교사(1위 초교·2위 중등)였다. 2위는 의사, 3위는 공무원이었다. 희망직업 1위부터 4위까지가 모두 교과서에 자주 거론되는 직업이었다. 간호사·경찰·연예인 등 희망직업 10위권 직업들도 교과서에 자주 소개되긴 마찬가지였다.

장명희 직능원 마이스터고 지원센터소장은 "교과서에서 제시 빈도가 높고 좋은 이미지로 표현된 직업과 고교생들의 희망·선호가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며 "청소년들이 노동시장 진입 전 일부 직업군에 대해서만 인지·경험하면서 편향된 직업인식을 갖고 협소하게 진로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직업 귀천, 이미지 묘사도 다르다=더 심각한 문제는 전문·기술직과 단순·생산노무직 등 직업에 따라 이미지를 다르게 표현했다는 점이다. 교과서의 직업묘사 부분을 살펴보면 76.6%가 중립적인 경향을 띠었다.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묘사는 각각 18.1%와 5.3%였다.

그런데 전문가 직업군은 긍정적인 묘사가 21.0%로 전체 평균(18.1%)보다 높았다. 공학전문가와 정보통신전문가는 긍정적 묘사가 각각 41.5%와 35.5%에 달했다.

반면 단순노무직은 부정적인 묘사가 전체 평균(5.3%)의 6배(29.1%)가량 됐다. 기능종사자(14.7%)와 농림어업 및 숙련종사자(14.3%) 역시 부정적인 묘사가 전체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노동부는 이러한 분석 내용을 교과부에 전달하고 개선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또 교과서 검토·심의과정에 산업계나 현장·직업전문가의 참여를 요청했다.

박성희 노동부 직업능력정책관은 "직업에 대한 편향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내용은 내년도 편찬 교과서부터 수정되도록 협의하고 있다"며 "2014년 적용 예정으로 개발 중인 교과서 편찬 논의에는 산업·직업 전문가가 참가해 사전에 문제를 예방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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