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서울본부 법규국장)

14일 저녁식사 약속이 있다. 올해 노무사시험 합격자들 중에서 민주노총의 수습노무사 교육과정인‘노동자의 벗’(노벗)에 관심이 있어 찾아오겠다는 사람들과의 첫 만남이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이들과의 만남은 늘 가슴 설렌다. 기대와 희망, 불안과 초조도 약간은 뒤섞여 있고 넘쳐나는 궁금증에 열정과 결의까지 맛깔나게 버무려져 있는 그 신선하고 복잡다단한 그들의 심리상태. 이제는 밥 먹듯이 까먹고 지내는 내 무뎌진 첫 마음을 다시 일깨워 주기에 충분하다.

신입 노무사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노벗을 준비해 온 지도 벌써 열두 해째에 접어든다. 매년 상반기에 약 5개월 동안 수습노무사들이 우리 사회 노동현장과 노동권의 실태를 직접 경험해 보고 각종 노동교육과 법규사업을 스스로 기획하고 진행해 보는 자리가 있다. 어떻게 노동자와 함께하는 노무사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나누고 방향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다.

세 시간이나 걸린 작명 고민 끝에 ‘제1기 민주노총 지원 노무사 과정 [2002, 노동자의 벗]’이라는 긴 이름을 짓고 2002년 2월23일 첫 입교식을 할 때가 떠오른다. 그때만 해도 제1기라 이름 붙인 호기로움만큼 다음해에 실제로 2기 과정을 개최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이렇게 10년이 넘게 노벗 과정이 이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못했다. 매년 적게는 20~30명에서 많게는 60여명까지, 그동안 수백명의 수습노무사들이 노벗과 함께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지금 각 단위 노동조합과 노동·사회단체에서 법규활동가로서, 아니면 노동자·노동조합 지원활동만을 전담하는 개업노무사로서 오늘도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제1기 노벗의 수료식 직후인 2002년 7월10일, 동대문 민주노총 서울본부 3층 강당 옆 창고 같은 작은 회의실에 10여명의 노무사가 모여 앉았다. 노벗 과정을 막 수료한 신입 노무사들과 이전부터 개별적으로 노동자·노조 지원활동에 고군분투해 오던 선배 노무사들이었다. 그들은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노동자 권리구제와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지원 활동을 함께해 보자고 결의했다. 그날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노노모)이 결성됐다. 처음 11개 노조·노무사 사무실에 소속된 27명으로 시작한 회원수는 현재 전국 75개의 노조·사회단체·노무법인 등에 소속된 131명으로 늘어났다. 그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물과 고통·투쟁의 현장에 노노모와 그 소속 노무사들이 있었다. 노노모는 현재 민변 노동위원회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진보적 법률가단체로 다양한 연대사업을 펼치고 있다.

노벗도 노노모도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다. 작은 기념사업조차 하나 없이 10주년의 한 해가 거의 끝나 가고 있는 이때, 올해처럼 노무사라는 직업명이 언론지상에 많이 오르내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노조를 파괴하고 부당노동행위를 기획한 쓰레기 같은 노무사들. 공교롭게도 그 노무법인도 그 노무사들도 2002년에 시작해 올해로 만 10년이 됐다. 하긴 어디 그뿐이겠는가. 수입이 능력으로 평가받는 것이 상식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느 전문가가 자신에게 더 많은 부와 이익을 가져다주는 의뢰인을 마다하겠는가. 신념과 소신을 일관되게 지켜 가는 전문가와 사안별로 입장이 달라지고 누구를 위해 복무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해 내면 그만인 기술자를 누가 다른 것이라고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을까.

지난 10년간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은 지치고 힘이 들어 결국은 떠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볼 때였다. 법·제도적 한계와 정치적 현실 속에서 이길 때보다는 질 때가 훨씬 많은 사건결과에 수없이 자책하기도 했다. 법규사업의 기초조차 없는 노동조합에 들어가서 온갖 잡일에 치이고 소모되며 정체성도 잃어 갔다. 심지어 잘난 고래들의 정파싸움에 새우등이 터지기도 했다. 돈벌이 안 되는 사건들로 일은 넘쳐나는데, 사무실 유지비조차 대기 어려워 빚만 쌓여 갔던 수많은 시간들과 사람들로 10년이 채워져 있다.

노노모는 ‘노동조합에 소속된 자, 노동·사회단체에 소속된 자’와 함께 ‘사용자 사건을 수임하지 않는 자’라는, 직업인모임 수준에서는 가당치도 않을 가입조건을 회칙으로 유지해 왔다. 그리고 자신들의 깃발을 드는 것이 아니라 곳곳의 노동현장에 산개해 활동가로서 노동자로서 그곳에 녹아들었다. 너무 손발이 오그라드는 자화자찬인가. 10주년이 저물어 가는 시점에 이렇게 한 번쯤은 서로 자축하고 격려 좀 한들 그게 뭐 그리 부끄러운 일이겠는가.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거대한 노동자의 흐름, 그 맨 뒷자리를 묵묵히 지키면서 10년을 함께해 온 그대들이 오늘 나는 참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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