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모
공인노무사
대한항공조종사
노조 고문 노무사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6일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2명이 송전탑에 오른 지 20일이 넘었고 재능교육 학습지 노동자들의 투쟁은 1천783일째 이어지고 있다.

법원이 비정규 노동자들 문제에 우호적인 판결을 내리더라도 자본은 버티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대법원이 현대차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사용이 불법파견임을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나 확인해 줬으나 현대차는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결국 두 명의 노동자가 고압이 흐르는 송전탑에서 목숨을 건 투쟁을 통해 비정규 노동자 문제를 알리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재능교육 노동자들에 대한 행정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되지 않지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지위가 인정되기 때문에 계약해지는 부당노동행위라는 판결이다. 다음날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열린 정기 금요집회에서 해고자들은 “반쪽짜리지만 노동자성을 인정받았다”며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재능교육 노동자들의 5년 가까운 투쟁을 버티기로 일관했던 회사의 태도로 보아 재능교육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문제도 현대차 비정규직처럼 법원의 우호적 판결이 해결해 주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런데 법원이 해결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대선후보들이 해결해 주겠다고 한다. 대선이 본격화되고 노동자표를 의식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모두 전직 민주노총 노조간부와 노동전문가 누구누구를 영입했다며 일정한 제도개선과 노동악법 개정을 약속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조차 당선되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하고 다닌다.

팍팍한 생활과 암담한 현실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대선후보들의 공약에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렇게라도 됐으면 좋겠다”며 체념하듯 찍을 후보를 선택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노동조합들도 자본의 노조파괴와 복수노조·타임오프 문제로 노조의 존속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어느 대선후보 캠프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지 살피며 지지후보를 저울질하고 있다.

한정된 지면에서 유력 대선후보들의 노동정책 내용을 세세하게 따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현실에서 대선후보들의 노동정책과 공약이 그대로 지켜질 것으로 믿는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

그들의 노동·복지 공약의 실현가능성을 따져 보자. 먼저 노동·복지 공약을 실행할 정책자금이 거의 없어 보인다. 이미 한국경제는 장기침체로 접어들었다. 유럽의 재정악화 등 세계적 경제위기로 한국은 이미 저성장에 접어들었다. 부채규모도 올해 1~6월 사이 103조원이 증가해 3천조원에 육박한다. 가계·기업·정부의 부채 합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34%에 달한다.

지금의 대선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2013년에는 경제위기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경제위기 상황에서 자본은 순순히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저렴한 인건비에 유연한 구조조정이 가능한 비정규직 인력사용을 제한하도록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무력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노조법상 노동3권이 강화되도록 그대로 내버려 두지도 않을 것이다. 노동·복지 공약 실현을 위해 대통령이 압박한다 해도 자본은 버틸 것으로 관측된다. 사회적 노사합의기구가 가동된다고 해도 정부는 중립적 조정자를 표방하며 노동측에 양보를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3명의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복지 공약 실현을 위해 자본에 부담을 늘리라고 설득하거나 강요하지는 못할 것이다. 약속한 대선공약은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전의 노무현·이명박 정권이 대선 때 공약을 제대로 실현했던가.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3권 보장 문제 등 노동자들의 요구를 해결할 주체는 법원이나 대통령 후보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과 자본의 첨예한 계급투쟁의 한복판에서 고공농성·단식·천막농성·거리선전·집회를 벌이는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문제의 원인이 자본주의 체제에 있고 누구도 이를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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