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노조 KB국민카드지부

"97년 신입 때만 해도 술집에서 친구들이 다른 카드를 꺼내면 국민카드를 쓰라고 한참을 설득할 정도로 애사심이 강했습니다. 선후배·동료와 성과를 만들어 가는 조직문화가 좋았던 거죠. 그런데 옛 국민은행으로의 통합과 재분리를 겪으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어요. 급기야 기존의 조직문화를 부정하는 신인사제도가 도입되고야 말았습니다."

최근 금융노조에 가입한 KB국민카드지부(위원장 이경)는 노조 산하조직 중 유일한 카드사업장이다. 대다수 카드사업장은 사무금융노조·연맹에 가입해 있다. 지부가 금융노조를 택한 것은 조직문화의 연속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지부 조합원 대부분이 2004년 옛 국민카드가 옛 국민은행으로 흡수·합병된 뒤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와 7년 이상 한솥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지부는 지난해 3월 KB국민은행에서 KB국민카드가 법인분리된 후 같은해 6월 설립됐다. 지난해 11월 초대 위원장에 당선된 이경(41·사진) 위원장은 지난 2일 오전 서울 내수동 지부 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함께 호흡하고 힘을 모야야 할 동료를 경쟁상대로 내모는 신인사제도의 전면시행을 차단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규칙 날치기 변경'으로 신인사제도 도입


KB금융그룹은 2010년 8월 KB국민은행의 카드사업 법인분리를 위해 설립단을 구성했다. 설립단은 "승진과 임금인상에 있어 더 나은 조건을 보장한다"며 공모를 진행했다. 옛 국민카드 시절부터 회사에 몸담고 있던 많은 직원들이 전적을 택했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카드업 활황기를 맞아 다수의 신규채용이 있었지만, 은행과의 합병 이후 이에 상응하는 자리가 없어 승진 적체가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적을 택한 이들은 법인분리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이경 위원장은 “회사가 법인분리 한 달 만인 지난해 4월1일부로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신인사제도를 도입했다”며 “공모 과정에서의 약속을 저버렸을 뿐 아니라 취업규칙 변경과 관련한 절차도 무시한 사기극”이라고 비판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취업규칙 작성·변경시 회사는 노조(노조가 없을 경우 근로자 과반수)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KB국민카드는 근로조건을 직원들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면서도 이 과정을 무시했다는 게 지부의 지적이다. 실제 이 위원장이 공개한 문건을 보면 회사는 신인사제도 시행 직후인 지난해 4월13일 각 부서에 동의문을 보내 "적용 예정인 붙임의 취업규칙 관련 제 규정을 열람·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위원장은 “회사가 제도를 시행한 다음 사전에 동의를 구한 것처럼 날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인사제도는 조직문화 말살책"


신인사제도의 핵심은 지점장 등이 직원 개인을 성과에 따라 5등급(S~D)으로 나누고 기본급에 차등을 두는 것이다. 상대평가 방식이어서 누군가는 자신의 기본급을 떼내 높은 등급을 받은 동료에게 줘야한다.

“기존의 기업문화가 그래 왔다면 적응의 문제일 수 있겠죠. 하지만 직원 모두가 집단의 협력을 중시하는 은행 KPI(핵심성과지표)에 익숙합니다. 법인분리 이후 기존 조직문화에 반하는 쪽으로 직원들을 내모는 것은 조직문화를 말살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지부의 반발로 현재 C·D등급에 대한 평가는 보류되고 있다. 지부는 9월 초 시작된 임금·단체협상에서 신인사제도 철폐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어 지난달 28일 교섭결렬을 선언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이 위원장은 이번주께 대의원대회를 소집해 파업에 대한 의사를 물을 예정이다. 지부는 지난달 30일 본점 앞에서 '신인사제도 철폐 결의대회'를 열고 사측에 전면투쟁을 선언했다. 수도권 전체 조합원 700여명이 이날 집회에 참여했다. 금융노조도 강력한 연대의사를 밝힌 상태다.

"학생운동도 과거 노조 활동 경험도 없는 제가 초대 위원장이 됐습니다. 출발선을 잘 다져야 앞길이 평탄할 텐데 마음이 무겁습니다. 신인사제도는 직원 전체의 명운이 달린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노조의 앞날을 걸고서 반드시 막아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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