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
성공회대
사회과학정책
대학원 교수

뭔가 점차 불투명해지는 느낌이다. 애초에는 문재인이나 안철수 모두 신뢰할 만한 정치적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단일화 구도를 통한 박근혜와의 양자대결이 아니고서는 승리가 없다는 인식이 있는 만큼 두 사람의 정치적 결속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들 봤다.

물론 일단 서로 세력화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유형의 기득권이 생기기 마련이다. 대선에 나선 자체가 이미 정치적 의지의 강도가 여타의 경우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 작용한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은 당연한 전제조건이고, 이것을 압도할 보다 큰 현실이 존재한다.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점이다.

박근혜로 압축되는 박정희 체제의 유산을 청산하고, 민주주의의 기본적 구조를 확고히 다져 나가야 하는 지점에 서 있는 우리로서는 상황이 결코 한가하지 않다. 그런데 요즈음 문재인-안철수 캠프 사이에 오가는 단어와 발언을 보면, 그런 절박한 인식이 결여돼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감이 생겨난다.

가령 단일화라는 단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안철수 쪽은 그보다는 연대와 연합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해한다. 단일화라는 틀에 갇히는 순간, 안철수의 고유한 정치내용이 보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일화라는 해법을 전제하지 않는 연대와 연합은 현실에서 파괴력을 갖지 못한다.

단일화라는 틀에만 의존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문재인 쪽도 다르지 않다. 단일화는 문과 안, 두 사람을 지지하는 세력의 결합이다. 따라서 단일화는 그런 내용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틀이 우선이다. 그러자면 서로 결합시킬 수 있을 만한 내용을 준비하는 것이 순서다. 그런 준비된 내용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의 단일화는 상대를 중도에 주저앉히겠다는 걸로 받아들여지게 돼 있다. 안철수 진영이 단일화 논법에 경계심을 보이는 것은 그래서 무리가 아니다.

자,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도 단일화와 연대가 서로 배타적인 개념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논전을 펼치면 말장난하고 있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서로 보완해 나가면서 하나의 몸이 돼 가는 과정이 아니라면, 우리는 문과 안의 관계에서 고민할 이유가 없게 된다.

지금 우리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을 게 아니라 두 진영을 모두 정치의 최전선에 서게 해서 이들이 이 시대의 한계를 돌파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 오가는 이야기의 수준이 미숙하고, 불필요한 정치적 감정 소진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실망하게 된다.

이러한 실망의 결과는 당장에 현실로 나타난다. 박근혜와의 양자 대결에서 문재인이나 안철수가 승세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여론조사는 이 두 진영의 지지부진한 대치와 긴장에 그 책임이 크다 할 것이다. 새로운 정치를 보여 주겠다고 하면서 그렇지 못한 상황을 보고 지지를 거둬들이거나 유보적으로 돌아서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면 과한가.

감동적인 결합은 과정에서도 그런 축적이 있어야 가능하다. 아니면 중도에서 마음을 접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이들의 마음을 다시 돌이키려면 몇 배나 힘들게 된다. 그런데도 이걸 제대로 생각하고 대응하지 못하면 매우 어려운 지점으로 우리가 끌려 들어가게 될 수 있다.

국민들은 화통한 정치, 길이 시원하게 뚫리는 듯한 정치, 주저없이 대의를 선택하는 정치, 인간적 존경이 우러나오게 하는 정치에 대한 갈망이 뜨겁다. 이걸 창출해 내지 못하면, 이 시대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힘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어려워진다.

서로 탐색하듯이 재지만 말고, 명확하게 문제를 풀어 나가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지금까지의 정치행태가 계속되면 이건 대인의 정치가 아니라 소인의 정치가 되기 십상이다. 새로운 정치·정치쇄신·정권교체 등의 현실은 국민들의 마음을 갑갑하게 만드는 정치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다.

성공회대 사회과학정책대학원 교수 (globalize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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