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경북 구미4공단에 위치한 휴브글로벌에서 발생한 불산(불화수소산) 누출사고의 여진이 발생 2주가 지나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사고 사업장에서 3년 전에도 비슷한 산업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고, 국회 국정감사에서 사고 발생 초기 정부의 부실 대응이 피해를 키운 것으로 지적 받으면서 논란이 더해가는 형국이다. 작업을 하던 노동자 5명은 소중한 목숨을 잃었고, 인근 주민들은 망가진 농사를 뒤로 한 채 집단 이주를 실시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사고 발생 이후 인근 노동자 1천359명이 고통을 호소하거나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인근의 공장들의 조업은 계속되고 있어 노동자들은 추가 피해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 원인조사 보고는 아직 발표되지 않고 있지만 지난 9일 경찰은 “작업자의 실수가 대형 누출사고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중간 조사결과를 내놨다. 노동계는 “사고를 노동자 과실로 몰아가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번 사고에서 정부가 곱씹어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전면조사 등 국민에 신뢰 줘야”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

지난 주말 사고 현장을 다녀왔다. 주민들의 대피 모습을 보며 한편으론 속이 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그래도 저들을 위험 지역을 떠날 수는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공단 노동자들은 사고 이후에도 매일 8시간 이상 오염된 지역에서 보내야 하는 현실이 떠올랐다. 공단 노동자들은 “가스를 마셨는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이냐” “병원 다녀왔는데 치료비는 정부가 내주는 거냐” 등 우리를 붙잡고 온갖 질문을 쏟아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들 옆에 정부는 없었다.

지금 정부는 주위의 위험물질로부터 나를 지켜줄 것이란 국민들의 믿음을 철저히 부숴 놓고 있다. 정부는 이 무너진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피해를 입은 이에게 정확한 사태를 설명하고 혹시 모를 건강 이상을 대비해 계속 관찰하며 살펴 봐야 한다. 공정안전진단이 누락됐을 만한 작은 기업들을 포함해서 종합적인 전면조사를 실시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역학조사를 실시할 때 피해 증상이 나타난 반경 2킬로미터까지는 정밀하게 조사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그냥 넘기려 하지 말고 침착하게 근본 대책을 만들어 나가야 부서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영세사업장 대책 수립해야”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첫째, 영세 사업장의 안전교육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5인 미만 사업장은 안전교육이 사업주 의무사항이 아니다. 산업재해가 소규모 사업장에 집중되는 가장큰 원인일 것이다. 법 정비도 필요하고, 정책적인 사업계획 수립이 절실하다. 안전보건공단이 매년 다양한 안전가이드나 교육자료를 만드는데 노동자들에게 직접 전달돼야 한다.

둘째, 산재보험 신고 데이터에 기반을 둔 사업장 노동자 수 파악 시스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사업주들이 산재보험 신고를 하지 않거나 인원을 축소해서 신고하는 경우 법 적용이나 감독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화학물질의 경우 사업의 특성상 노동자 수는 적더라도 취급하는 물질의 위험성은 높다. 산안감독관 규정의 정기감독 대상도 20인 이상 사업장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화학물질 등 위험도가 높은 사업장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셋째, 유해화학물질 정보가 전문가만 알아 볼 수 있는 방식이라면 정보공개가 돼도 의미가 없다. 석면의 경우 석면 지도 작성이 법제화 돼 있으나 지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지도를 봐도 무슨 뜻인지 몰라 효과가 제한된다. 석면이나 화학물질이 포함돼 있는 장소에 직접 표식을 해서 누구나 알고 조심하도록 해야 실질적인 효과가 있다. 안전보건 문제는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다. 노동자·시민 모두의 알권리가 보장되고, 누구나 나서서 관리 감독의 주체가 돼야 해결할 수 있다.

“기업살인법 제정 시급해” 

정영숙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
본부 본부장

이번 사고는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주)휴브글로벌에서는 2009년에도 불화수소가스 유출 사고가 발생했는데 또다시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건 명백한 인재로 사업장의 안전보건 관리감독 업무를 유기한 노동부가 노동자의 죽음을 방치한 것과 다름없다.

맹독성 가스가 유출됐을 경우 노동부가 신속히 대응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주변사업장에 대해 작업중지명령 등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어떠한 대책도 마련하지 못했다.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앞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중대사고 발생 사업장에 대한 사업주 처벌을 강화할 수 있는 기업살인법 제정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또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를 비롯해 건강상의 피해를 입은 모든 노동자에 대해 산재보상 등 피해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임시휴업조치 즉각 내려야” 

배태선
민주노총 구미시지부
사무국장

사고 피해자에 대한 직업별 분류가 나오지 않은 상태다. 다만 이달 6일 병원치료를 받은 2천497명 가운데 노동자가 1천441명인 것으로 파악된 바 있다. 피해자 2명 중 1명은 노동자인 셈이다.

사고가 난 구미 4공단에는 312개 사업장 6천500명의 노동자가 근무한다. 이들 중 2천명 가까이가 건강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재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휴브글로벌과 2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아사히글라스라는 곳은 1천명 정도 되는 큰 사업장인데 여전히 조업 중이다.

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은 정부 눈치를 보면서 조업을 계속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즉각적인 임시휴업 조치를 시행할 것을 요구했지만 노동부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피해실태에 대한 역학조사 범위도 아주 제한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노동부가 환경부와 공동으로 피해지역에 대한 건강영향평가를 하는데 노동자는 대상이 고작 400명에 불과하다.

불산뿐만 아니라 4공단에서 다루는 화공약품 100여개에 대한 실태조사도 이뤄져야 한다. 화약약품 취급사업장의 폭발사고는 사후적 조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전예방 밖에 답이 없다.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민관 공동의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현장 관리책임자와 감독관청에 책임 물어야” 

주영수
한림대성심병원
산업의학과 교수

해당 사업장에 대한 노동부의 전반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특히 일부 작업자의 부주의로 인한 인재로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작업현장의 관리책임을 맡고 있는 회사와 관리자·감독관청에게 응분의 책임을 묻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고 사업장이 평소 어떻게 관리·운영돼 왔는지, 그에 대한 감독관청의 지도감독은 어떻게 돼 왔는지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노동부에 의해 수행돼야 한다.

이와 함께 사고 산업단지의 어느 범위까지 불산 노출이 이뤄졌고, 인근회사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로 노출이 됐는지에 대한 산업보건적 접근이 필요하다.

사고 인근의 주민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치료가 병행돼야 한다. 불산의 특성상 만성 호흡기 질환자들에게 이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의료서비스가 지속적으로 제공돼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