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실시된 서울시 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 직전에 고용노동부가 서울고용노동청 관내 사업장 10만곳에 사실상의 투표독려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예산에도 없는 사업을 벌이려다 보니 산재기금에도 손을 댄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부가 정치적 중립의무를 어겼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10일 한정애 민주통합당 의원에 따르면 서울노동청은 주민투표 5일 전인 지난해 8월19일 ‘공민권 행사 관련 안내’라는 제목의 공문을 관내 사업장에 배포했다. 배포대상은 5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 10만곳이었다. 서올노동청은 공문에서 "투표를 하기 위한 시간은 근로기준법에 보장돼 있으니 주민투표와 관련해 근로자의 공민권 행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참고해 달라"고 밝혔다.

노동부가 개별 사업장에 공민권 행사를 보장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투표 참여를 보장하라고 홍보하는 예산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국 사업장이 150만개인데 안내문만 발송해도 엄청난 예산이 들어간다"며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주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총선 등 대규모 투표가 있었던 2009년부터 올해 8월까지 공민권 행사와 관련한 노동부 예산은 편성되지도, 집행되지도 않았다.

편성된 예산이 없으니 서울노동청은 다른 항목의 예산을 전용해 발송비용을 충당했다. 사업장 우편발송에 쓴 돈은 3천655만원이다. 노사관계 선진화 예산이나 서울지방관서 경비에서 2천600만원을 전용했고, 산재예방에 사용되는 산재보상기금에서도 1천만원이 넘는 돈을 조달했다. 서울노동청은 공문에 안심일터 서울지역추진본부 명의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당부의 말씀’이라는 글을 끼워 넣어 명분을 쌓았다. 투표 닷새 전에 공문을 보냈지만 봉투작업 비용과 우편요금은 선거가 끝난 뒤 지불했다.

정황상 노동부가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시 서울시 주민투표는 시민들이 투표 참여 여부로 정치적 의사를 드러내던 정책선거였다. 따라서 노동부가 공문을 보낸 행위 자체가 투표독려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주민투표 과정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시장직을 걸면서까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반면 야권은 "부자아이 가난한 아이 편 가르는 나쁜 투표"라고 비판하면서 투표거부운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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