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금은 대권후보들의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대권후보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TV도 신문도 그렇다. 국민들 중 어느 정도가 자신을 지지하고 있나. 그것이 관심사다. 보수도 민주도 그렇다. 어떤 정책을 발표해야 국민의 표를 더 받을 수 있을까.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그것으로 이 나라는 돌아가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진보라고, 노동이라고 다르지 않다. 자고서 눈을 떠보니 갑자기 이 나라에서 국민이 주인행세하는 민주주의가 꽃 피우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세상이 온통 그렇게 보인다. 하긴 지난 국회의원 총선거 때도 그랬다. 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그랬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에서 국민이 무엇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도 아니다. 국민은 그저 그걸 행사할 권력의 후보에게 투표할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은 스스로 대한민국의 정책·법 등 의사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인민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런 인민을 외면하고 서 있다. 이 세상에서 인민은 선거를 통해서 자신이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서 복종할 권력을 선택한다.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민주주의가 그야말로 인민의 자기 지배라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면 선거가 곧 민주주의일 수는 없다. 민주공화국의 의사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권력을 세우는 것이 선거다. 그렇다면 선거는 본질적으로 인민의 자기 지배를 부정하기 위한 권력의 기술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요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무덤일 수 있다.

2. 오늘은 거창하게 세상의 민주주의를 말하고 싶지 않다. 선거로 민주주의를 말하는 세상에서 무엇을 더 보태고 싶지 않다. 단지 노동조합에서 민주주의를 말하고 싶다. 민주주의가 아니면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그러니 노동자는 적어도 노동자조직에서라도 자신의 민주주의를 바로 세워 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무엇이 다를까.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민주주의학교라고 말해 왔다. 수십년 민주노조운동을 전개해 왔다는 이 나라에서 민주노조는 무엇인가. 민주노조는 그냥 노동조합이 아니고 민주주의로 조직이 운영되고 활동하는 노동조합을 말한다. 이런 민주노조의 정의는 누구라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민주노조란 말인가. 이건 누구라도 쉽게 말하지 못한다. 이렇게 거창한 민주노조 말고 그저 노동조합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다행스럽게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규정해 놓았다. “노동조합이라 함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를 말한다”(노조법 제2조 제4호 본문). 그러니 근로조건 유지·개선·향상을 위해 사용자에 맞서 자주적으로 활동하지 않는 노동조합은 이 나라 노조법으로도 노동조합이 아니다. 단체교섭이 노사협의와 다를 게 없고 협력과 상생을 말하는, 그래서 사용자에 맞서 자주적으로 활동하지 않는 어용노조는 대한민국의 법은 노조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나라에서 민주노조라고 말해 온 이 나라 노조들은 노조법으로 보자면 사실 그저 노동조합일 뿐이다. 어용노조의 반대를 민주노조라고 불러 왔던 것이니 노조법상으로는 노조 바로세우기였던 것이다. 뭐 그것조차도 안 되는 노조들, 예를 들어 사용자의 회유와 협박에 노조 조직형태를 기업별노조로 변경하고 사용자에 맞서 투쟁도 못하는 노조들이야 노조활동을 온통 제한하고 금지하고 있는 이 나라 노조법의 눈으로도 노조로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조합원 범위를 사용자가 요구한다고 단체협약으로 제한해서 노동조합 조직범위를 정하고 있는 이 나라 대부분의 노조들은 과연 노조일 수 있을까. 민주노조들에서 이런 단체협약은 셀 수 없이 많다. 조직범위조차도 제 스스로 정하지 못하는 노조가 “근로자가 주체가 되서 자주적으로 단결”한 단체인 노조법상 노조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 나라에서 민주노조라 부른다는 건 민주의 어이상실이다. 민주노조라고 말해지는 노조들을 노동조합이라고 불러야 하는지조차 심각하게 따져 봐야 한다. 이 나라에서는 지금 노조운동이 명확하지 않으니 노조의 언어도 분명하지 않다.

3. 이 나라에서 민주노조는 때로는 조합원을 불신한다. 그래도 당당하게 민주노조라고 말한다. 조합원총회에서는 민주노총 소속으로 하기 어렵다며 이를 대의원회 의결사항으로 규약 변경해서 의결하는 사례까지 있었다. 특별한 노조의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수많은 민주노조들에서 연합단체 가입 및 탈퇴에 관한 사항은 대의원회에서 의결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그저 민주노총 00연맹을 상급단체로 하게 되면 그때부터 민주노조라고 불렀다. 노조가 설립된 직후에는 대의원들 성향이 괜찮다. 그런데 그 뒤 사정이 달라진다. 회사가 부서별로 실시되는 대의원 선거에 은밀히 관여하고 대의원을 관리하고 대의원들 성향이 변한다. 이제 대의원들 다수가 민주노총 탈퇴를 추진하는 일도 생긴다. 한 번도 민주노총의 노동법개정 총파업이나 노동자대회에 참석하지도 않았던 대의원들이 민주노총이 정치투쟁만 한다며 노조는 노조답게 조합원들의 임금 등을 챙겨야 한다며 탈퇴를 결의하기도 한다. 어디 상급단체 가입 탈퇴 건 만이겠는가. 이번에는 상급단체 건이지만 다음에는 또 무슨 안건은 조합원총회는 안 된다고 한다. 예산과 결산, 합병과 분할 그리고 조직형태변경 등을 총회가 아닌 대의원회의 의결사항으로 규정한다. 이렇게 수많은 노조들에서 조합원을 불신하고서도 민주노조다. 그러나 민주노조는 조합원의 의지의 결정체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면 이해할 때까지 설명하고 교육해서 조합원 스스로 판단하고 끌고 가게 해야 한다. 조합원을 불신하고서는 더 이상 민주노조일 수 없다. 민주주의로 노동조합의 조직을 운영하고 활동하는 것이 민주노조이고, 그것 부정하는 순간 민주노조가 아니다. 당연히 조합원이 스스로 노동조합의 의사를 결정하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대의원과 위원장을 조합원이 직접 선출한다고 민주노조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조합의 의사를 결정하고 운영할 자를 선출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노동조합의 조직 운영과 활동이 조합원이 아닌 대표의 행위로만 행해진다면 노동조합에서 조합원은 선거권자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조합원은 조합비 내면서 대표들의 결정과 지시에 복종해야 하는 노동조합이라는 나라의 국민이어서는 안 된다. 그런 민주노조를 기반으로 한 노동자정당의 후보가 대권을 차지해도 그건 노동자세상일 수 없다.

4. 노조법은 반드시 총회에서 의결해야 하는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노조법상 노동조합이라면 적어도 “1. 규약의 제정과 변경에 관한 사항, 2. 임원의 선거와 해임에 관한 사항, 3. 단체협약에 관한 사항, 4. 예산·결산에 관한 사항, 5. 기금의 설치·관리 또는 처분에 관한 사항, 6. 연합단체의 설립·가입 또는 탈퇴에 관한 사항, 7. 합병·분할 또는 해산에 관한 사항, 8. 조직형태 변경에 관한 사항”은 조합원총회에서 의결하도록 하고, 나아가 노조의 조직 운영에서 “기타 중요한 사항”까지도 의결하도록 정하고 있다(제16조 제1항).

이 노동조합 총회의 필요적 의결사항은 노동조합이라면 이 정도는 조합원총회에서 직접 의결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노조를 민주노조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고 해도 민주노조라면 노조법에서 정한 노동조합 총회의 필요적 의결사항은 총회에서 의결해야 하는 것 아닐까. 적어도 민주노조라면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도 지금 이 나라에서 수많은 노조에서, 민주노조라 불리우는 노조조차도 이 총회의 필요적 의결사항조차도 대부분 대의원회에서 갈음할 수 있도록 규약에서 정하고 있고 그렇게 운영하고 있다. 노조법이 그걸 허용하고 있으니 적어도 위법은 아니니 당연하게 규약으로 정하고서 그에 따라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제17조 제1항). 그러니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대의원회가 노조의 주요한 의사를 결정하고 위원장 등 임원이 집행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조합원은 조합비를 내고서 대의원과 위원장 등 임원을 선출하는 것이, 어쩌다 그들이 쟁의행위를 하기로 결정하면 그 찬반투표를 하는 것이, 나아가 민주노조라고 해서 임단협 안의 찬반투표를 하는 것이 전부다. 현실적 필요를 말한다. 조합원 100명조차 되지 않는 노조도, 10만명의 노조도 조합원총회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조합원들이 직접 결정하는 방안을 찾아 보기라도 했던가. 노동자세상이 대표가 권력을 차지하고서 그 권력에 노동자가 복종하는 세상이 아니라면 노동자는 그것을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노동자조직에서 그 민주주의를 세워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는 민주주의를 학습하고서 세상에 실현할 수가 있다. 민주노조는 노동자의 민주주의학교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민주노조는 아직 아니다. 선거로는 민주주의를 세워 낼 수 없다. 조합원의 선거로 세워진 노동조합은 노동자에게는 민주주의의 학교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무덤일 수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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