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19대 국회 첫 정기국회가 열리면서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환경노동위원회의 경우 총선 후 각 정당이 경쟁적으로 발의한 비정규직 고용 관련 법안, 근로기준법·노조법 개정안 등 무려 40여개의 법안이 이달에 다뤄질 예정이다. 각 정당이 발의한 법안 중에는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법안처럼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보장과 별 관련이 없는 법안도 있지만, 대체로 노동기본권 보장의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들이 대다수다.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누구도 외면하기 어려운 사회문제이고, 총선·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노동계의 요구에 호응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때문이다.

이렇게 표면적으로는 노동계에 유리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재계의 반대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지난 7월 경총은 야당이 수적으로 우세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구성에 우려를 표했다. 경총은 “환노위가 자칫 노동계의 구미에 맞는 법안들만 양산하게 될 경우 이는 기업의 인력운용을 옥죄어 성장과 일자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반대의견을 밝혔다. 최근에는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진짜 사장인 원청에게 사용자 책임을 부과하는 노조법 제2조 개정안 등 노동관계법 개정에 대해 반대하는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손해보험협회 등 사용자단체의 의견서가 국회의원들에게 전달됐다.

이들은 한결같이 특수고용 노동자를 근로자로 인정하게 되면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증가하고, 결국 기업이 이들 노동자의 사용규모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관련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는 맹목적 믿음으로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완화’를 경쟁적으로 추진해 왔던 신자유주의 정권 15년의 지배적 논리에 매우 충실한 주장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을 반대로 들여다보면 오히려 특수고용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가 드러난다. 재계의 말마따나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기업을 위해 일하고 특정 사용자에게 종속돼 있으면서도 적정한 노동시간과 임금보장이라는 최소한의 권리마저 누리지 못해 왔다. 대표적인 특수고용 노동자인 화물운송노동자를 예로 들어 보자. 현대글로비스·CJ대한통운·한진 등 재벌대기업의 운송사는 차량 한 대, 기사 한 명 고용하지 않고 대기업의 물류를 하청 운송업체에 주선하는 기능만으로 천문학적 이윤을 얻고 있다. 지난해 교통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부산-서울 간 40피트 컨테이너 운임의 경우 대기업운송사가 123만원을 받는다고 할 때 다단계 하도급을 거쳐 실제 화물운송을 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는 78만원을 받는 실정이다. 운송업체는 실제 운송업무는 하지 않으면서 알선료만 챙기는 대신, 화물운송노동자는 반토막 난 운임에 차량운행에 들어가는 모든 경비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산업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화물운송노동자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소득을 얻기 위해 지난해 기준으로 주당 평균 69.9시간의 살인적 초장시간노동에 내몰리고 있다. 그리고 화물트럭을 운행하다가 사망한 화물 특수고용 노동자의 숫자만 1천121명이었다. 이는 한 해 업무상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그럼에도 이들은 노동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다. 이들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권리를 인정했을 때 ‘새로이’ 발생한다는 기업의 비용은 사실 그동안 노동자들의 피땀을 통해 이윤을 얻으면서 기업이 지불하지 않았던 ‘체불된’ 비용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이 지불하지 않은 비용을 노동자와 그 가족·사회가 짊어진 것이다.

이러한 모순된 구조를 바꿔 보고자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뭉쳐 싸워 왔다. 올해 6월에도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화물노동자의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표준요율제 쟁취와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파업을 진행했고, 여야는 모두 화물연대의 요구를 수용해 법 개정을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파업 종료 이후 지금까지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회복하기 위한 노조법 개정안은 정기국회에서 논의가 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요즈음 새누리당마저 경제민주화를 주창하고 있다. 온갖 특혜를 받는 재벌대기업의 성장이 국민의 삶의 개선으로 이어지지도 않고 노동자의 인권신장과는 더더군다나 거리가 먼 한국사회다. 한국에서 비정규직 문제와 경제민주화 문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특수고용 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노동자들이 헌법에 보장된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실제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를 통해 최소한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노동을 통해 이윤을 얻는 기업이 그에 합당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을 살리는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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