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다시 나는 노동기본권에 관한 토론회에 참석했다. ‘국제기준에 비춰 본 한국의 노동기본권 실태와 ILO 협약 비준확대 방안’ 국제세미나였다. 17일 국제노동기구(ILO)와 민주노총·한국노총의 공동주최로 개최됐다. 한국이 ILO에 가입한지 20년이 지났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아직도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 등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정부는 협약비준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강제를 통한 소수노조의 교섭권과 단체행동권 박탈, 전임자 임금지급금지 법제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불인정 등으로 노동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 그래서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노동법 개정의 필요와 ILO 협약 비준확대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ILO 관계자까지 참석해서 토론했다. 그 동안 이런 내용의 토론회는 수도 없이 있었다. 그 중 몇 번은 필자도 참석해서 토론했었다. 이런 토론회는 이제 이 나라에서 연례행사가 됐다. 그래서 나는 어제 지금까지 해 왔던 말들을 토론회에서 반복해야 했다.

2.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최근 심각하게 문제되고 있는 것들이 심각하게 국제기준에 비춰 문제”라고 발표하고 토론했다.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의 조직과 활동에서 최근 심각하게 문제되고 있는 것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문제, 전임자 임금지급금지법,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법, 공격적 직장폐쇄 등이 노동기본권에 관한 국제기준에 못 미친다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사의 자유’ 등 ILO 협약을 비준해야 한다고 한국노총의 정책본부장과 민주노총의 정책실장은 발표했다. 이에 대해서 나는 심각하게 문제되고 있는 것들이 문제라고 인식하는 게 심각한 문제라고 토론했다. 그리고 토론회에서는 노동관계법령과 법원에 의한 노동기본권 제한의 구체적인 실태를 설명하면서, 그것이 문제라고 국제노동기준에 비춰 본 노동기본권 보장 실태에 관해 조경배 교수가 발표했다. 이에 대해서 나는 그 실태에 동의하면서 이 나라에서 노조법 등 노동관계법령은 원칙적으로 노동기본권의 행사를 금지하고 있는 법이라고 토론해야 했다.

3. 원칙적으로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한하고 금지하는 법령이 있었다. 단결금지법이다. 프랑스시민혁명 당시 1791년 제정된 르샤플리에법, 영국의 1800년경 단결금지법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법원은 노동기본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위법한 것으로 봤다. 단결금지법리다. 이 나라에서 노동기본권에 관해서 토론한다면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이 나라는 지금부터 200여년 전의 단결금지법체제에서 과연 벗어났는지 묻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 나라에서 단결금지법체제를 부정할 수 있을 때에야 노동기본권 행사의 구제척인 제한규정의 부당성을 논의하고 그것이 문제라고 비판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노동기본권 행사의 제한에 관해서 논의하면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는 것들이 문제라고, 국제기준 또는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 과도한 제한인 것이라며 그것들이 부당하다는 것으로 결론짓게 된다. 노동기본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금지하고 있는 단결금지법체제를 부정해서 극복해야 한다는 점은 놓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논의는 문제라는 것들에 한해서 진행되고 이에 관해 노사정은 공식 또는 비공식으로 협의하게 되는데 여기서는 기존 노동법체계의 틀에서 절충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노동조합이 문제규정이라고 개선을 요구한 사항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정부에 의해 사용자측 주문을 담아내는 절충이 입법되고 만다. 그래서 노조법을 개정해서 복수노조 설립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면서 교섭창구단일화절차를 강제하고 말았다. 그 이전에는 산별노조 등 초기업단위노조의 설립에 관한 논의하면서 전임자급여 지급금지 등이 함께 노사정협의가 진행됐고 마침내 입법되고 말았다. 단결금지법체제는 지금부터 약 150년 전에, 즉 1860년대에서 1870년대에 프랑스와 영국에서부터 극복됐다. 더 이상 노동자가 노동조합으로 단결해서 활동하는 것을 국가가 불법이라고 평가해서 범죄로 처벌하게 않게 됐다. 한 사람이 했을 때 그 행위가 처벌하지 않는데 열 사람이 했다고 해서 처벌할 수 없다. 파업, 즉 노동자가 노무제공을 집단적으로 거부했다 해서 이를 범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 이 상식을 국가가 수용했다. 이렇게 법령과 그 법령을 적용하는 법원이 단결금지법리를 부정하고서야 노동관계에 관한 노동자의 결사로서 노동조합의 조직과 그 활동이 보장됐다. 그것으로 집단적인 노동자의 권리로서 노동법이 탄생하게 됐다. 더 이상 단순히 노무제공을 거부하는 쟁의행위는 범죄가 아니게 됐다. 그리고 1910년대를 전후해서 노동자가 노동조합으로 단결해서 활동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손해배상 등 민사책임을 묻지 않게 됐다. 바로 이러한 법체제를, 이 나라에서는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한 헌법을 제정하면서 확인하고 선언했다. 이번 토론회에서 한국정부에 비준할 것을 요구한 ‘결사의 자유’에 관한 ILO 제87 협약은 이를 국제노동기준으로 확인해 준 것이다. 즉 ILO 제87 협약은 결사의 자유로서 노동자는 사전승인을 받지 아니하고 스스로 선택한 단체를 조직하고, 그 단체의 규약에 따를 것만을 조건으로 해 그 단체에 가입할 권리를 가지게 됐다. (제2조)

파업 등 단체의 계획을 정해서 실행하며(제3조 제1항), 국가기관은 이를 제한하거나 그 행사를 방해하는 어떠한 간섭도 중지해야 하고(제3조 제2항), 국가의 법령은 이상 협약에서 보장하고 있는 사항을 저해하거나 저해할 목적으로 적용돼서는 안된다(제8조 제2항)고 선언하고 보장했다. 이 협약은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파업 등 사용자를 상대로 활동하는 것을 권리로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이미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될 때부터 이 나라에서는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으로서 보장돼 온 것이다. 그리고 파업 등을 국가가 범죄로 처벌함으로써 제재하는 것은, 강제노동 폐지에 관한 ILO 협약조차 비준하지 않았어도 헌법의 노동기본권 보장에 의해서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토론회를 하게 되면 언제나 한국정부에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폐지’에 관한 ILO 협약들을 비준하라고 발표한다. 이런 ILO 협약들을 비준하지 않아서 국제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노동법령과 그에 따른 법원의 법적용을 가져온 것인냥 토론한다. 그러나 그것은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한 대한민국 헌법체제를 무시한 논의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헌법을 무시한 노조법 등 노동관계법령을 무시해야 하는 것이지 ILO 협약의 비준을 통해서 비로소 이 나라 노동자에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헌법을 무시한 노조법 등 노동관계법령을 부정함으로써만 이 나라에서 극복될 수 있다. 그것은 국가가 노동자에게 대단한 무슨 새롭게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 나라 노동자에게 노동조합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일 뿐이다. 노동자가 스스로 단결해 활동할 수 있도록 국가의 규제로부터 해방시켜 자유를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일 뿐이다.

4. 지금 이 나라 노조운동은 뒤죽박죽이다. 10% 조직률의 노총들은 온갖 것들이 문제되고 있으니 온갖 것들을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그 중 더욱 심각하게 문제되고 있는 것들이 있으니 그 문제를 심각하게 말하고 있다. 노조법이 복수노조를 금지했을 때는 복수노조 설립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했고, 노조법이 산별노조 설립을 보장하면서 산별노조의 노조 활동이 문제되자 산별노조 활동을 위한 입법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전임자급여지급을 금지하자 전임자급여 지급금지를 강제한 법을 폐지하고 노사자율을 보장하라고 주장하고,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절차가 강제되자 이를 폐지해서 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하라고 외쳐 왔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학습지 등 특수고용노동자, 교원과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과 활동이 문제되자 이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고 한다. 필수공익업무 종사자의 쟁의행위가 문제되자 이에 관해서, 직장폐쇄와 용역투입이 문제되자 이에 관해서 문제라며 이에 관한 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많은 것들을 문제라고 제기하고 있음에도 정작 이 나라 노동자는 노동조합할 자유가 보장되고 있지 않다고는 감히 말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랬다.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특별하고 예외적으로 노동조합할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금지되고 있다는 지점에서 그것이 문제라고 제기했고, 지금까지 그 지점에서 노조법개정을 주장하며 투쟁해 왔다. 그러나 모든 문제들은 이 나라에서 노동자에게 노동조합할 자유가 원칙적으로 제한되고 금지됐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이미 노동자에게 보장한 노동기본권을, 즉 노동조합할 자유를 제한하고 금지함으로써 노동조합의 조직과 활동에 관한 온갖 문제들이 튀어나왔다. 그래서 나오는 대로 문제라고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주장해 왔던 것인데 그래도 될까. 그래서는 안 된다. 이는 이 나라 노조법개정사가, 그 현재적 귀결로서 현행 노조법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노동조합할 자유의 과도한 제한이 문제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에서는 노동조합할 자유 그 자체가 그것이 문제다. 10% 조직률의 노동운동은 10%만 노동조합할 자유의 행사를 보장하고 있는 법이 문제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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