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영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현장)

다발성경화증. 생소한 병명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산재사건을 담당하기 전까지는….

다발성경화증이란 현재까지 명확한 발병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질병이다. 뇌·척수·시신경을 포함하는 중추신경계에 발생하는 만성 신경면역계 질환이다. 신경을 둘러싸고 있는 부분을 수초라고 하는데, 이 부위에 염증이 생겨 신경전달을 방해받아 여러 부위에 장애를 일으킨다. 시신경이 손상되면 시력을 상실하고 운동신경을 관장하는 소뇌가 손상되면 걷지 못하게 된다. 언제, 어느 부위에 어떻게 재발할지 알 수 없어 평생 재발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질환이다.

2년 전 처음 만났던 A양과 B양. 각각 30대 초반, 2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밝은 성격의 A양은 다발성경화증으로 시신경을 거의 잃어서 잘 볼 수 없었다. 크고 예쁜 눈을 가진 A는 그나마 형태라도 볼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B양은 병실에서 처음 만났다. B양은 강직과 경련으로 만성적인 통증에 시달려 일상생활이 힘든 상태였다. 몇 년째 병원생활을 하면서 힘들었을 텐데도 씩씩하게 말하곤 했다.

다발성경화증의 발병원인에 대해 가장 관련 있다고 연구된 직업적 요인으로는 유기용제와 금속물질 노출, 교대근무 등이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모두 S전자에서 일했고 12시간의 교대근무를 2~3년간 열심히 한 것 이외에 직업력이 없었다. A양은 납에, B양은 유기용제에 계속적인 노출이 있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일하면서 맡았던 특유의 냄새에 대한 기억이 뚜렷했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재학 중 또는 졸업하는 해부터 일을 시작했다. A양은 재직 중에, B양은 퇴사 후 발병했다.

이들의 산재사건을 시작하면서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역시 결과는 불승인이었다.

“다발성경화증의 원인이 아직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으며 근무기간이 짧은 데다, 유기용제 노출의 정도가 확인되지 않고 인체에 영향을 줄 정도가 아니라는 전문가 의견 등 해당 작업 유해인자와의 과학적·역학적인 인과성이 명확하지 않아 업무관련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되기에 신청 상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밝힌 불승인의 이유였다.

두 사람의 산재 불승인 결과를 통해 희귀질환의 경우 노동자에게 입증책임을 지우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백혈병은 병의 원인이 어느 정도 밝혀졌기 때문에 작업환경에서 그 발병원인 물질에 대한 노출 정도를 입증하면 업무관련성을 판단할 여지가 생긴다. 그런데 다발성경화증과 같은 희귀질환의 경우 발병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작업환경에서 입증해야 할 물질조차 특정할 수 없고 결국 입증할 수 없다. 질병의 원인은 그 사회의 과학적·의학적 기술 등 사회적 자원을 집중시켜야 겨우 밝힐 수 있다. 사회적 부담을 통해 발병원인이 밝혀진 질병에 대해서 노동자는 그만큼 입증책임의 부담을 덜 수 있다.

하지만 희귀질환의 경우 사회적 기술력의 한계 등으로 아직 밝혀내지 못한 발병의 원인을 개인이 입증해야만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 개인이 입증책임의 부담을 모두 져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희귀질환에서는 개인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노동자의 업무와 질병과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산재 여부에 대한 판단이 그나마 가능해진다.

B양은 산재신청을 하고 난 뒤 1년을 넘게 기다린 끝에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불승인 통보를 받고 얼마 후 B양은 재발해 걷기 힘들게 됐다. 이번엔 큰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에겐 산재승인에 대해 “별 기대는 안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재발에 대한 공포가 밀려올수록 산재인정에 대한 간절함이 커질 것이다. “가능성이 있는 건가요?”라고 가끔 카카오톡으로 반복해서 묻는 그의 질문에 난, 매번 쉽게 답을 할 수가 없다. 언젠가는 그 간절함에 꼭 답을 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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