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여야 대선후보들의 노동계 접촉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요즈음이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피맺힌 요구에는 침묵하면서도 전태일동상에 헌화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깜짝행보는 대선후보들에게 노동문제가 어떤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후보들의 발언들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문재인 후보는 “이제는 민주통합당과 노동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하고, 김두관 후보는 “당선되면 노동자가 국정에 참여하는 최초의 정부를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손학규 후보는 “야권 대통합 과정에서 노조를 정치와 당, 정부의 한 파트너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24일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정권교체를 위해 상호존중과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건설 이후 요즈음처럼 제도권 야당 인사들과 공식적 만남이 잦은 때가 없었다. 특히 민주노총이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전망을 찾지 못하고 대신 야권연대를 통한 정권교체에 중점을 두면서, 제도권 정치세력에 대한 노조운동의 긴장감은 거의 해제된 상태인 듯하다. 민주노총과 민주통합당이 지난 총선 과정에서 사상 최초로 정책협약식을 갖고 김영훈 위원장이 직접 민주통합당의 국회의원 후보 지원유세에 나섰던 모습이나, 이번에 정권교체를 위한 협력을 발표한 모습은 5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장면이다.

노조운동이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추진하면서도 제도정당에 대해 노동자대중의 정치·경제적 요구를 제시하고 이를 수용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폭거가 더해져 노동자·민중의 삶이 위기에 처하고, 이에 대해 정치권이 자기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시기이기에 노조운동의 이런 행보가 이해되는 면도 있다. 비정규직 문제만 보더라도,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비정규직 확산과 고용파괴의 주요 동력이었던 만큼 기간제법·파견법을 만든 당사자인 민주통합당 역시 법·제도적 개선을 약속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문제는 민주통합당의 이런 정책적 선회가 현실로 구체화되도록 그리고 새 정부가 노조운동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만들 동력이 있는가에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민주통합당은 아직까지 이런 선회를 ‘약속’만 하고 있는 것 같고, 민주노총은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일 외에 별다른 수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특수고용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가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근로자’ 정의를 확대하고, ‘진짜 사장’인 원청이 사용자 책임을 지도록 ‘사용자’ 정의를 확대하도록 한 노조법 개정안은 지난 6월25일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민주노총 대표자들과의 면담에서 약속하고도 두 달이 넘도록 법안 발의조차 안 되고 있다. 민주통합당이 약속한 대로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해도 올해 국회에서 상임위 통과라도 꾀해 보는 데에도 수많은 난관이 놓여 있다. 벌써부터 재계는 이런 법안들을 ‘반(反)기업법’이라며 반대공세를 진행하고 있고, 만도·SJM·현대차에서 보이는 것처럼 직접 폭력을 동원해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고 있다.

민주노총이 6월 경고파업, 8월 총파업을 통해 요구하고 있는 비정규직 철폐·정리해고 철폐·노조법 전면 재개정 문제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가 공통적으로 일관되게 추진해 온 노동유연화 정책 및 노동기본권 약화 전략과 맞짱을 뜨는 요구들이다. 이런 요구가 ‘청원’과 ‘공약’으로 관철될 수 있으리라 믿는 노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약속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투쟁력 확보와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흔들림 없이 대변할 수 있는 독자적 세력화 전망을 세워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노조운동의 요구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있다는 점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여론조사 결과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대해 “요구내용은 타당하지만 파업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옳다”(37.8%), “요구내용과 파업이 모두 타당하다”(20.2%)는 응답이 나왔다고 한다. 재계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조차 국민의 60%가 민주노총의 요구가 타당하다고 응답했다니, 노조운동의 투쟁 요구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96~97년 총파업 이후 최대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민주노총이여 쫄지 말고 투쟁력과 독자적 전망을 조직하자!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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